"꽃과 나무가 좋아진다면" 나이 탓이 아닌 본질을 깨달은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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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좋은 것은 나무를 비로소 이해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무가 좋은 것은 나무를 비로소 이해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나무가 좋다.

나무가 이루는 숲이 좋고, 그 숲에 깃드는 새들의 소리, 숲 언저리에 흐르는 개울, 계절마다 바뀌는 고유한 향, 숲의 풍경이 좋다. 나무가 좋다보니,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다 좋아지는 거 같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듯 하다.

꽃이 좋고, 나무가 좋아지기 시작하면 주변에서는 나이들어서 그렇다고 한다. 아니라고 부정할까 하다가,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인 거 같기도 해서 굳이 반박하진 않는다. 이것은 옳다 그르다를 따질 수 있는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님은 확실하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나무가 좋아지는 이유를 '나이가 들어 비로소 나무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이.해.하기로 했다.

한번 뿌리 내린 곳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순명(順命)

인간도 낳아주시는 부모님과 가정환경을 미리 선택하지 못한다. 그리고 한번 태어났으면 좋든 싫든 평생 운명처럼 그것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누구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만, 또 다른 누구는 흙수저가 전부다. 그 뿐인가. 그 조차 없이 태어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훌륭히 제 몫을 다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것처럼, 나무 역시 싹을 틔우고 뿌리 내린 곳에서 놀라운 생명력을 발휘하여 가지를 뻗는다.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 위로 새싹을 틔운 민들레. 거친 해풍을 맞으며 바닷가 절벽 위에서 당당히 뿌리내린 해송을 보면서 우린 감동을 받기도 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도 모르게 풀과 나무에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다. 그 순간 만큼은 내가 곧 그 풀이고 나무인 것이다.

어쩌면 인간에게서 욕심과 에고(ego)를 빼고 나면 그 나머지는 나무가 아닐까.

내가 '나이들어 비로소 나무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표현하고자 하는 건, 인간이 본래 나무와 같은 본질을 가졌음에도, 자아에 둘러싸여 잠시 잊어 버린 것임을 나이들어 조금씩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뿌리내린 자리를 원망하지 않는 순명(順命)이다.

본래 순명은 "하느님의 뜻이나 하늘의 명령에 순순히 따름"이라는 종교적인 의미가 강한 단어다. 하지만 종교를 떠나 '내게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묵묵히 걸어간다'는 의미로 이만한 말이 없다. 나무가 선 자리는 나무에게 운명이고, 그 자리에서 가지를 뻗는 것은 나무의 순명이다.

이 세상 어떤 나무도 남과 같은 운명을 가지지 않는다. 즉, 하루종일 내리 쬐는 햇빛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고, 떨어지는 빗물이 다르다. 그럼에도 나무는 자기의 자리에서 강한 생명력으로 최선을 다한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넘어지고 쓰러져도 아무 일 없는 듯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을까. 누군가 내 가지 절반을 잘라버려도 나머지로 잎을 틔워 앞만 보며 뻗어나갈 수 있을까.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포기했던 것은 얼마나 많은가.

계절을 읽고 싹을 틔우는 정확한 안목(眼目)

그 뿐인가.

나무는 누구보다 민감하고 예리하며 뛰어난 통찰과 안목을 가진 존재다. 세상의 변화를 미리 읽어내며, 정확히 해야할 일을 해야할 시점에 실행한다.

세상의 변화는 결국 음과 양의 반복이다. 밝음 다음에 어두움이 오고, 다시 밝음이 온다. 더움과 추움의 반복도 마찬가지다. 세상 모든 일은 서로 다른 극단을 오가는 그 어느 중간의 변곡점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이다.

나무는 낮과 밤이라는 하루, 여름과 겨울이라는 계절의 변곡점에 서서 그때 해야하는 무언가를 그 순간 정확히 해낸다. 나무가 낮에는 광합성을 하고, 밤에는 쉰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봄에는 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싹을 기르며, 가을에는 낙엽을 떨구고, 겨울에는 휴식을 하는 일년 주기의 성장을 반복하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간단한 것도, 당연한 것도 아니다.

주식 투자에 빗대어 생각해보자.

주식투자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주가가 오르기 전에 사야 하고, 한참 올랐을 때 팔아야 한다. 반대로 한참 올랐을 때 샀다가, 다시 떨어진 후에 팔게 되면 투자금을 잃는다.

마찬가지로 나무가 매년 풍성하게 가지를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봄에 싹을 틔우고, 가을에는 잎을 떨구어야 한다. 반대로 가을에 싹을 틔운다면, 엄동설한에 생잎들이 모두 얼어버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여름과 겨울은 그렇다 하더라도, 봄과 가을은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또 겨우내 한파가 몰아치다가 잠깐 날이 풀려 따뜻한 볕이 들 때 지금이 봄인지 여전한 겨울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무에겐 매 순간이 목숨을 거는 판단일 것이다.

하지만 산에서 숲에서 자라는 나무들 어느 하나도 계절을 헷갈려하지 않고 정확한 타이밍을 읽어내니 그 통찰과 안목이 대단할 뿐이다.

더불어 함께 숲을 이루는 공생(共生)

나무의 지혜는 순명과 안목에 그치지 않는다.

나무는 다른 나무, 풀과 더불어 숲을 이룬다. 하나보다 둘, 둘보다 셋 그리고 다수가 이루는 숲은 나무 개체 차원에서도 물의 확보와 적절한 바람의 차단 측면에서 생존의 가능성을 높인다. 그 뿐만 아니라, 여러 나무와 풀이 어우러진 숲은 새와 동물을 함께 품는 생명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숲은 공생의 시스템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이자 한 몸이다. 숲의 뼈대를 이루는 나무들은 지하의 뿌리로도 연결되며, 뿌리가 닿지 않는 공간은 박테리아를 포함한 다양한 미생물들이 생명의 순환고리를 완성한다.

이처럼 숲을 이루는 각 구성원들은 서로가 자연스럽게 나누어 맡은 임무를 성실히 다하며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게 공동체를 가꾸어간다. 심지어 인간마저 산소를 나무가 이루는 숲에 의존하니, 숲은 그 안의 생명을 살릴 뿐만 아니라, 그 밖의 생명까지도 책임지는 거대한 지구공동체의 또 다른 구성원이다.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공생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나무의 매력이 순명, 안목, 공생으로 끝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겐 이 3가지만으로도 충분히 나무를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나무의 모습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 그리고 지혜롭게 변화에 대처할 수 있을지 모두 담겨 있다.

그게 바로 이곳이 '지혜로운 나무들의 숲'인 이유고, 블로그의 주소가 treeinsight.org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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