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 앞 재개발 갈등과 해법 (중천건)

종묘 (대한민국 국보 제227호)
종묘 (대한민국 국보 제227호)

한국 최초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조선 왕조의 신성한 성역인 종묘. 그 정문 앞 ‘세운4구역’에 140미터 높이의 빌딩이 들어설 수 있다는 최근 대법원의 판결은, 묵은 갈등에 다시 불을 지폈다. 서울시의 조례 개정이 적법했다는 이 판결은, 그러나, 문제의 종결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대립을 예고하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는 ‘미래 도시 경쟁력’과 수십 년간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 ‘주민들의 고통’을 해소해야 한다는 강력한 개발 의지를,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의 진정성(Authenticity) 보존’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내세우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한쪽이 이기면 다른 한쪽은 모든 것을 잃는 듯한 이 ‘치킨 게임’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이 교착 상태를 단순한 행정 소송이나 정치적 타협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생 시스템(Symbiotic System)’이 직면한 위기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기, ‘공생 시스템 주역 모델(SSIM)’은 이 첨예한 대립의 본질과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SSIM은 공생 시스템의 핵심을 세 가지 요소로 분석한다. 시스템의 근본적 잠재력인 ‘다양성(Diversity)’은 하괘(下卦)로, 이 잠재력이 발현되는 결과물인 ‘환원(Contribution)’은 상괘(上卦)로, 그리고 시스템의 방향성을 이끄는 동력인 ‘리더십(Leadership)’은 주효(主爻)로 상징된다.

지금 하늘에 용이 너무 많다 (重天乾의 상황)

현재 종묘 앞 재개발을 둘러싼 이 공생 시스템의 하괘, 즉 ‘다양성’의 상황은 ‘건(乾, ☰)’괘로 볼 수 있다. ‘건(乾)’은 ‘스스로 움직이는 강력한 주도자’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지금 이 시스템에는 두 개의 강력한 주도자들이 존재한다. ‘남산-종묘 녹지축’이라는 거대 비전과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을 확보한 서울시라는 주도자와, 유네스코라는 국제적 권위와 '종묘'라는 국가적 성역을 수호하는 국가유산청이라는 또 다른 주도자다. SSIM은 ‘건(乾)’의 다양성이 지닌 그림자를 “하늘에 용이 너무 많으면 서로의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라고 경고한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두 개의 강력한 주도권이 서로를 포용의 대상이 아닌 제거의 대상으로 여기며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즉 '건(乾)'의 다양성이 근본적인 잠재력이자 갈등의 씨앗이다.

그렇다면 이 강력한 ‘건(乾)’의 다양성은 시스템 외부로 어떻게 발현되고 있을까? SSIM 분석에 따르면, 상괘(上卦) 즉 ‘환원’의 모습 역시 ‘건(乾, ☰)’이다. ‘건(乾)’의 환원은 ‘거대한 비전과 강력한 통제력으로 질서를 확립’하려는 속성을 가진다. 서울시는 ‘미래 경쟁력’이라는 거대 비전(乾)을, 국가유산청은 ‘역사 보존’이라는 거대 비전(乾)을 내세우며, 각자의 비전으로 상대방을 ‘통제’하고 자신들의 ‘질서’를 이식하려 하고 있다. 개발 계획안을 밀어붙이는 서울시라는 '용'과, ‘세계유산영향평가(WHIA)’의 즉각적인 수용을 요구하며 개발 자체를 원점 검토하려는 국가유산청의 ‘용’이 맞부딪혀 싸우는 형국이다. 하괘(다양성)가 ‘건(乾)’이고 상괘(환원)마저 ‘건(乾)’일 때, 우리는 64괘 중 가장 강력하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괘인 ‘중천건(重天乾)’을 마주하게 된다. 모든 효(爻)가 양(陽)으로만 이루어진 이 괘는 유연성이나 수용성이 끼어들 틈이 없는, 오직 '강 대 강'의 대치만을 의미한다.

중천건(重天乾) - 6개의 효가 모두 양으로 되어 있다
중천건(重天乾) - 6개의 효가 모두 양으로 되어 있다

‘중천건’ 괘가 가장 위험한 이유는 그 여섯 번째 효(爻), 즉 리더십의 마지막 단계에서 ‘항룡유회(亢龍有悔)’를 경고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힘과 명분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상대를 굴복시키려 할 때, 그 끝에는 승리가 아닌 공멸의 후회만이 남는다는 시스템의 준엄한 경고다. 현재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의 리더십은 지금 이 ‘항룡(亢龍)’의 모습으로 절벽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만약 서울시의 ‘용(龍)’이 이겨 140미터 빌딩이 종묘의 경관을 훼손한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후회(悔)를 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국가유산청의 ‘용(龍)’이 이겨 개발이 무기한 좌초되고 도심 한복판이 슬럼으로 방치된다면, 수십 년간 인내해 온 주민들과 도시의 활력은 또 다른 거대한 후회(悔)로 남을 것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묘 앞 개발 건을 두고 펼쳐지는 ‘중천건’의 공생 상황은 어느 쪽이 이기든 결국 시스템 전체의 파멸과 ‘후회(悔)’로 귀결되는 최악의 공생 실패 시나리오다.

한 발 물러서서 신중하라 (九四의 리더십)

그렇다면 이 파국적인 ‘항룡유회’를 피하고 진정한 공생을 이룰 리더십(주효)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SSIM의 관점에서 현재 시스템은 이미 '건(乾)'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중천건의 상황이므로 괘 내부에서 리더십의 '주효(主爻)'로서 이 치달음을 멈춘 한 단계 아래, 즉 ‘구사(九四)’의 효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설령 뛰어오른다 하더라도 연못에 머무르게 되니, 허물이 없다.

或躍在淵 無咎. (周易 重天乾 九四)

‘중천건’의 구사(九四) 효사는 '때를 가려 신중하게 행동하면 허물이 없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는 최고 권력(九五, 九六)에 근접한 자리에서, 섣불리 승리의 칼을 빼들지 않고 한번 더 멈추어 서서 나아갈지 물러설지 신중하게 결정하는 리더십을 상징한다. 현재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은 서로의 비전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며 마지막 충돌(上九)을 앞두고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비룡재천(九五)'의 강력한 추진력이나 '항룡유회(上九)'의 극단적인 강경함이 아니라, "혹약재연(或躍在淵)"의 신중함이다.

중천건(重天乾) 구사 - 구오와 상구 직전의 리더십이다
중천건(重天乾) 구사 - 구오와 상구 직전의 리더십이다

이 '혹약재연'의 리더십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아야 할 것이다. 서울시는 대법원 판결이라는 법적 무기를 쥐고 있지만, 이를 최종적으로 관철하기 전에 잠시 뛰어오르기를 망설이고 국가유산청과 유네스코의 권고를 진정성 있게 숙고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국가유산청은 '보존만이 유일한 선'이라는 극단적인 명분(乾)을 내려놓고, 개발의 필연성과 주민 고통을 이해하며 협상의 여지를 모색해야 한다. 양측이 이처럼 한 걸음 물러서서 '연못(淵)'처럼 깊은 성찰을 할 때, 비로소 '무구(無咎)', 즉 허물을 면하고 공생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다. 결국 용들이 경쟁하는 '중천건'의 극한 상황에서 지금 당장 해야할 것은 극단적 행동(亢龍)을 멈추고 신중한 재고(或躍在淵)라는 것이다.

통제가 아닌 수용의 환원으로 나가야 할 때 (地天泰를 목표로)

그리고 나서 다음으로 이상적인 공생의 유형인 ‘지천태(地天泰)’를 추구해야 한다. ‘태(泰)’는 태평성대, 즉 막힘없는 소통과 번영을 상징한다. ‘지천태’의 구조는 하괘(다양성)가 ‘건(乾, ☰)’(하늘)이고, 상괘(환원)가 ‘곤(坤, ☷)’(땅)이다. ‘중천건’을 ‘지천태’로 바꾸기 위해, 우리는 하괘(乾), 즉 서울시의 개발 논리와 국가유산청의 보존 논리라는 강력한 ‘다양성(잠재력)’ 자체를 부정할 필요가 없다. 각자의 강력한 입장은 시스템의 동력으로서 인정하되, 상괘(환원)의 방식만 ‘건(乾)’(통제)에서 ‘곤(坤)’(수용)으로 바꾸면 된다.

지천태(地天泰) - 3개의 음효 안에 3개의 양효가 있다
지천태(地天泰) - 3개의 음효 안에 3개의 양효가 있다

‘곤(坤)’의 환원이란 “다양성을 포용하여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토양을 구축”하는 환경을 의미한다. 이는 오세훈 시장과 국가유산청장이 ‘이기는 용’이 되려는 경쟁을 멈추고, 두 개의 강력한 ‘용’(개발과 보존)을 모두 품어 안는 ‘너른 땅(坤)’의 역할을 자처해야 함을 뜻한다. 구체적인 첫걸음은 국가유산청이 요구하는 ‘세계유산영향평가(WHIA)’를 대하는 서울시의 태도다. ‘중천건’의 시각에서는 이를 ‘개발을 가로막는 통제(乾)’로 보겠지만, ‘지천태’의 시각에서는 이를 ‘지속가능한 토양(坤)을 만들기 위한 객관적 데이터’로 수용(坤)하게 된다. 이 평가는 대립의 도구가 아니라, 하늘의 기운(乾, 개발계획)이 땅(坤, 보존가치)과 만나 소통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이 ‘수용성’의 발현이야말로 시스템을 ‘태(泰)’의 상태로 이끄는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다.

#25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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