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 시스템, 주역(周易)으로 설계하다
공생 시스템, 왜 지금 주역(周易)인가?
우리는 본능적으로 '공생(共生, Symbiosis)'이 선(善)이며 가치 있는 목표라고 느낀다. 생태계의 복잡한 그물망부터,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는 도시, 그리고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힌 현대의 기업 경영에 이르기까지, '공생'은 지속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성공적인 공생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구축하고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어려운 과제였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공동체와 제국, 기업, 심지어 문명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과정은, 결국 이 공생의 역동성을 어떻게 관리했는지에 대한 성적표와도 같다.
지속가능한 공생 시스템은 하나의 정교한 유기체다. 이 유기체가 살아 숨 쉬기 위해서는 세 가지 핵심 동력이 필요하다. 첫째, 시스템에 활력과 잠재력을 불어넣는 '다양성(Diversity)', 둘째, 그 다양성이 성숙하여 공동체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환원(Contribution)', 셋째, 이 모든 과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조율하는 '리더십(Leadership)'이 그것이다. 이 세 요소는 단순한 병렬적 나열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가 되는 복합적인 관계 속에 존재한다.
문제는 이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지극히 추상적이고 다층적이며, 무엇보다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데 있다. 다양성은 때로 갈등의 불씨가 되며, 환원은 종종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히고, 리더십은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고 독선에 빠지기도 한다. 이처럼 복잡하고 역동적인 시스템을 어떻게 일관된 체계로 기술하고 분석할 수 있을까? 수많은 현대 경영학과 사회학의 모델들이 이 질문에 답하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이 난제에 대한 실마리를 수천 년 전 동아시아의 지혜인 주역(周易)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역'이라고 하면 점(占)을 치는 신비로운 도구로 오해하기 쉽지만, 그 본질은 '변화(易)'의 원리를 다루는 가장 정교한 시스템 분석 철학이다. 주역의 '역(易)'이라는 글자 자체가 '변화'를 상징하며, 64괘(卦)와 384효(爻)는 우주와 인간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변화의 패턴과 관계의 유형을 상징적 언어로 압축해 놓은 것이다. 주역은 고정된 실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흐름, 그리고 '때(時)'에 맞는 '자리(位)'의 역학을 다룬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역은 정지된 시스템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생 시스템'을 모델링하는 데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따라서 이 글은 공생 시스템의 3대 핵심 요소를 주역 64괘의 구조적 상징성, 즉 하괘(下卦), 상괘(上卦), 그리고 주효(主爻)라는 틀을 빌려 기술해보고자 한다.
다양성의 근간, 하괘(下卦)의 상징
공생 시스템의 첫 번째 기둥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시스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토양 그 자체이며, 모든 창발성(Emergence)의 원천이다. 만약 한 시스템이 단 하나의 종(種), 단 하나의 문화, 단 하나의 생각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그 시스템은 환경 변화에 극도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생태계의 '종의 다양성'이 무너질 때 역병이 창궐하고 생태계 전체가 붕괴하듯, 사회나 조직의 '사고의 다양성'이 사라질 때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져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고대 로마가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천년 제국의 기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순혈의 라틴 민족이라는 단일성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복지의 다양한 민족, 문화, 종교, 기술을 흡수하고 융합하는 놀라운 '다양성의 기반'에서 그 힘이 나왔다. 로마는 식민지에 로마법과 도로를 이식하면서도, 현지의 신들을 로마의 판테온으로 끌어안고, 유능한 이민족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유연성을 보였다. 이처럼 시스템의 근본적인 성격과 잠재력을 규정하는 '다양성'은, 주역 64괘를 구성하는 '하괘(下卦)'의 역할과 정확히 일치한다.
주역의 64괘는 각각 3개의 효로 이루어진 8괘(八卦, 소성괘) 두 개가 위아래로 겹쳐진 구조다. 이때 아래에 위치한 괘를 '하괘' 또는 '내괘(內卦)'라 부르며, 이는 그 괘의 근본 성격, 내부적 잠재력, 혹은 변화의 시작점을 상징한다. 8괘는 각각 하늘(乾), 땅(坤), 물(坎), 불(離), 우레(震), 바람(巽), 산(艮), 못(兌)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의 성정을 상징한다. 예를 들어, 하괘가 만물을 생성하는 '땅(坤)'이라면 그 시스템은 수용성과 포용력을 근간으로 하는 다양성을, 하괘가 강력한 추진력의 '하늘(乾)'이라면 그 시스템은 주도적이고 역동적인 인재들을 근간으로 하는 다양성을 의미할 것이다. 하괘가 '우레(震)'라면 아래로부터의 역동적인 변화와 행동력을, '바람(巽)'이라면 부드러운 침투와 소통을 그 기반으로 삼는다. 즉, 공생 시스템이 어떤 종류의 다양성을 그 근본 토양(하괘)으로 삼느냐가 전체 시스템의 첫 번째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다.
환원의 과정, 상괘(上卦)의 역동성
하지만 다양성은 그 자체로 존재하기만 해서는 혼돈이나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며 개방성을 자랑했던 로마가, 그 말기에는 오히려 과도한 다양성을 통제하지 못하고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과 내부 분열로 무너졌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다양성이라는 잠재력(하괘)은 반드시 성장하고 진화하여 공동체에 실질적으로 '환원(Contribution)'되는 단계로 나아가야만 비로소 공생의 가치를 실현한다. 다양성(하괘)이 성장하여 공동체에 기여하는 이 '환원'의 단계는, 시간의 흐름, 지위의 상승, 혹은 인과관계의 결과를 상징하는 주역 대성괘의 '상괘(上卦)'로 표현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를 상상해보자. 십자군 전쟁과 이슬람 세계와의 교류, 그리고 동로마 제국의 멸망(1453)으로 인한 학자들의 유입은, 서유럽 사회에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이슬람의 진보된 과학·수학이라는 '다양한' 지식(하괘)을 불어넣었다. 이 잠재력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같은 후원자(리더십의 초기 형태)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라는 기술적 기반을 만나, 단테,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거장들을 통해 문학과 예술, 과학이라는 인류사적 '환원'(상괘)의 결과물로 폭발했다.
이 과정은 주역에서 하괘(시작, 내부, 아래)가 상괘(결과, 외부, 위)로 발전해 나가는 시간적·인과적 관계와 정확히 일치한다. 주역은 하괘와 상괘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본다. 가장 이상적인 공생의 상태를 상징하는 괘 중 하나가 11번째 괘인 '지천태(地天泰)'괘다. 이 괘는 강력한 '하늘(乾)'이 하괘(내부, 아래)에 있고, 수용적인 '땅(坤)'이 상괘(외부, 위)에 있다. 하늘의 기운은 위로 오르려 하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 내리려 하니, 두 기운이 만나고 소통하며 만물이 번성하는 '태평성대'를 이룬다. 이는 내부의 다양한 잠재력(乾)이 외부의 수용적 환경(坤)과 만나 자유롭게 소통하며 엄청난 '환원'을 이루는 공생 시스템의 완벽한 모델이다.

반면, 이와 정반대인 12번째 '천지비(天地否)'괘는, 하늘(乾)이 위에 있고 땅(坤)이 아래에 있다. 하늘은 계속 위로만 가고 땅은 계속 아래로만 꺼지니, 둘 사이의 소통이 끊어져 버린 '막힘(否)'의 상태다. 이는 조직 내부에 뛰어난 인재(乾)들이 있어도, 이들이 현장(坤)과 소통하지 않고 상아탑에만 머물러 아무런 실질적 기여(환원)를 하지 못하는, 가장 비극적인 '공생 실패'의 모습이다. 이처럼 다양성(하괘)이 환원(상괘)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두 요소 간의 역동적인 '소통과 관계'의 문제이며, 주역은 이 관계의 질(質)을 정교하게 기술한다.

시스템의 구심점, 주효(主爻)의 리더십
이렇게 다양성이라는 기반(하괘)과 환원이라는 결과(상괘)가 갖춰졌다고 해서 시스템이 저절로 태평성대(地天泰)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이 둘의 상호작용을 이끌고, '막힘(否)'을 뚫어 '통함(泰)'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바로 '리더십(Leadership)'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상호작용을 이끌고 전체 시스템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리더십은, 괘 전체의 성격과 분위기를 주도하는 '주효(主爻)' 또는 '동효(動爻)'로 상징할 수 있다.
주역의 괘 하나는 여섯 개의 효(爻)로 구성되며, 이 6개의 효는 시스템 내부의 다양한 구성원 또는 상황의 6가지 단계를 나타낸다. 전통적으로 하괘의 가운데인 2효(二爻)는 실무를 담당하는 '신하'의 자리로, 상괘의 가운데인 5효(五爻)는 '왕(CEO)'의 자리로 해석되어 왔다. 이 두 자리가 올바른 관계(예: 2효와 5효가 서로 음양으로 호응)를 맺는 것을 이상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주역의 진정한 묘미는, 시스템을 이끄는 핵심 동력, 즉 '리더십'이 반드시 5효(CEO)에만 있지 않다고 보는 유연성에 있다. 64괘, 즉 64가지의 다른 상황마다 그 상황을 주도하고 변화를 이끄는 핵심적인 효, '주효(主爻)'가 달라진다. 어떤 괘는 5효가 주효이지만, 어떤 괘는 2효가 주효일 수 있으며, 때로는 가장 아래의 1효(초효)나 가장 위의 6효(상효)가 주효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상황적 리더십(Situational Leadership)'의 원형이다.
예를 들어 24번째 '지뢰복(地雷復)'괘를 보자. 이 괘는 상괘가 '땅(坤)'이고 하괘가 '우레(震)'다. 땅(坤)은 어둠과 수용을, 우레(震)는 하나의 양(陽)효가 두 개의 음(陰)효 밑에서 움직임을 시작함을 뜻한다. 즉, '지뢰복'괘는 깊은 어둠 속(상괘 坤)에서 마침내 하나의 빛, 하나의 움직임(하괘 震의 맨 아래 초효)이 '복귀(復)'하는 상황을 그린다. 이 괘의 리더십, 즉 주효는 5효의 왕이 아니라, 가장 밑바닥에서 변화를 시작하는 '초효(初爻)'의 양(陽)효다. 이는 억압된 체제 속에서 시작되는 아래로부터의 개혁, 혹은 오랜 침체기를 뚫고 나오는 작은 혁신의 불씨를 상징한다.

앞서 언급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의 사례를 이 '지뢰복'괘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서구 문물이라는 '다양성'(하괘 震의 동력)을 받아들여 근대화라는 '환원'(상괘 坤의 새로운 질서)을 이룬 이 사건을 주도한 것은, 5효의 '왕'이 아니었다. 막부라는 어둠 속에서 '화혼양재(和魂洋才, 일본 고유의 정신을 근간으로 삼아 서양의 학문과 기술을 받아들이자는 의미)'라는 원칙을 내세운 사쓰마와 조슈번의 하급 무사 계층, 즉 '초효' 또는 '2효'의 위치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끈 '주효'로서의 리더십이었다. 만약 이 주효가 다른 세력이었거나, 다른 원칙(가령 서양의 문물 수입 만을 고집하는 양태)을 가졌다면 일본의 근대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이처럼 괘의 특징에 따라 주효는 달라질 수 있으며, 그 '주효'가 어떤 방침(음/양)을 가지고 어느 '자리(位)'에서 행동하느냐가 공동체 전체의 성패를 결정한다.
공생 시스템 주역 모델 (Symbiotic System Iching Model)
결론적으로 본 모델은 주역 64괘의 구조(하괘, 상괘, 주효)를 통해 공생 시스템의 3대 핵심 요소(다양성, 환원, 리더십)를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기술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다양성을 하괘(시스템의 근본적 잠재력)로, 환원을 상괘(시스템의 사회적 발현)로, 리더십을 주효(시스템의 방향성 주도)로 대응시킴으로써, 우리는 복잡하게만 보이던 공생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놀랍도록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필자는 이 모델을 공생 시스템 주역 모델(Symbiotic System Iching Model, SSIM)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이는 단순히 동양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지적 유희에 그치지 않는다. 이 모델은 현대의 조직과 사회를 진단하는 강력한 '진단 도구(Diagnostic Tool)'가 될 수 있다. 만약 지금 우리가 속한 공동체나 조직이 활력을 잃고 '비색(否)'의 상태에 빠져 있다면, 이 모델을 거울삼아 다음과 같이 자문(自問)해 볼 수 있다.
- "우리의 하괘(下卦)는 무엇인가?": 우리 조직의 근본적인 다양성은 무엇에 기반하고 있는가? 혹시 획일적인 인재상만을 고집하며 '하괘'의 잠재력을 스스로 고갈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 "우리의 상괘(上卦)는 어떠한가?": 이 다양성이 자유롭게 소통하며 실질적인 '환원'(성과,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지천태(泰)'가 아닌 '천지비(否)'처럼, 내부 소통이 막혀 잠재력이 사장되고 있는가?
- "우리의 주효(主爻)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 시스템에 가장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5효(CEO)의 톱다운 방식인가, 아니면 2효(실무자)의 현장 중심 리더십인가? 혹은 '지뢰복(復)'괘의 초효처럼, 지금은 가장 밑바닥의 작은 혁신과 변화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인가?
주역의 '괘(卦)'라는 글자가 본래 '걸어놓고 본다(掛)'는 뜻을 가졌듯, 이 주역 모델은 우리 시대 공생의 현주소를 객관적으로 비춰보는 귀중한 거울이 될 수 있다.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 고대의 지혜는 '어떻게 함께 잘 살 것인가'라는 인류의 영원한 질문에 대해 여전히 가장 깊고 정교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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