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왜 '한국 기업'이기를 포기했을까? (feat. 쿠팡 탈퇴했다가 2주 만에 느낀 '중독' 증상)

시민단체에서 쿠팡 탈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 : 서울뉴스통신)
시민단체에서 쿠팡 탈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 : 서울뉴스통신)

쿠팡 중독을 체험하다

매출의 90% 이상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기업. 창업주가 1978년 서울 서초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었던 기업. 세계에서 가장 못살던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되었다면서 회사의 미래 성장성을 한국인의 DNA에 두었던 기업.

누구나 다 아는 쿠팡(주)의 이야기다.

이처럼 우리나라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쿠팡이라는 회사가 이제는 미국에 상장된 미국법인임을 들어, 최근 고객정보유출로 시작된 우리 정부 차원의 조사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히 한국이라는 정체성의 부정을 넘어, 우리와 미국과의 통상분쟁까지 일으키려는 듯한 모습은 한 때 쿠팡을 응원하고, 쿠팡의 서비스에 열광했던(부족한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애정으로 버텼다) 필자에게 너무나 큰 실망을 안겨줬다. (그래서 결국 탈팡하고야 말았다....)

이제는 안다.

자본주의에서 독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3,000만명 이상의 개인정보(공동현관 비밀번호부터 어떤 물건들을 구입했는지 내역까지 등등)가 탈탈 털려 어디로 갔는지, 범죄조직에 흘러갔는지, 어디 홍보업체 DB로 들어갔는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고작 정보유출에 대한 사과로 몇 천원 짜리 쿠폰을 내미는 모습에 처음에는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차라리 주지나 말지..)

그런데 진짜 당황스러운 것은 그런 일을 당하고도, 내 삶에서 쿠팡을 떼어내려는 작업이 속시원하지 못하고, 도리어 불편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히 회원 탈퇴를 위한 몇 번의 클릭이 아닌, 삶의 습관을 바꾸는 문제에 가까웠다. 정말 익숙하게 살고 있던 동네를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하는 느낌 같은.

(탈팡은 생각보다 번거로웠고, 귀찮았으며, 비용도 심심하게 들었다. 새벽배송은 SSG배송으로, 배달비가 무료였던 쿠팡이츠는 다른 배달앱으로, '왕좌의 게임'을 즐겨보던 쿠팡플레이는 다른 OTT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 동안 쿠팡의 다양한 서비스들이 나를 완전히 락인(Lock-In) 시켰고, 나 스스로 갇힌 줄도 모르고, 당연한 듯 쿠팡의 시스템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탈팡한 지, 2주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새로 익힌 서비스들에 꽤 익숙해지면서 쿠팡 없이도 이전처럼 살만해지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끔씩 그 편리함(얄밉게도 결제가 참 편했다)과 과감함(무료 배달에 OTT까지 다 주는..)이 그립긴 하다. 이건 익숙함이 아니라 중독이랑 비슷하다. 떠나긴 했지만, 역시나 대단한 시스템을 가진 회사라고 종종 느낀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궁금했다.

왜 쿠팡은 우리 나라가 아닌 미국에 법인을 세웠을까. 쿠팡이 몇년간 수조원의 적자를 감수해가며 어떤 시스템을 구축했길래, 많은 소비자들을 이토록 사로잡았을까. 그리고 앞으로 쿠팡 같은 회사가 우리 나라에 세워질 순 없을까.

탈팡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건, 바로 쿠팡의 무료 배달 서비스인 '쿠팡이츠'였다
탈팡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건, 바로 쿠팡의 무료 배달 서비스인 '쿠팡이츠'였다

스타트업 쿠팡이 한국이 아닌 뉴욕증시(NYSE)를 선택한 것은 필연적이었다

쿠팡이 한국 코스피가 아닌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선택한 것은 지배구조 흔히 말하는 거버넌스(Governance) 유지와 자본 조달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쿠팡은 2010년 8월 10일, 자본금 30억 원과 7명의 직원으로 이루어진 스타트업(김범석 의장)으로 출발했다. 스타트업은 자본금이 적으므로, 성장성을 담보로 신규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외부 자본을 유치하게 될 경우, 창업주의 지분 비율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자본금 30억원에서 창업주의 지분이 100% 일 때, 신규 투자금 30억원을 받게 되면, 자본금은 2배인 60억원이 되지만, 창업주의 지분은 그 절반인 50%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창업주의 아이디어와 비전, 추진력, 경영능력이 성장의 절대 자산이 되는데, 이처럼 경영권이 희석되면 신규 투자를 받는 것이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차등의결권(Dual-class voting)을 인정한다. 즉, 주식 1주당 다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일례로 쿠팡의 지배구조 핵심인 '클래스 B' 주식은 1주당 29표의 의결권을 부여한다. 즉, 1%의 지분만으로 29%의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게 함으로써 대규모 외부 자본 유치 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영권 희석 리스크를 원천 봉쇄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쿠팡은 비전펀드 등으로부터 총 34억 달러(약 3조 8천억 원)라는 천문학적 투자를 유치하면서도 창업주의 장기적 비전과 경영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자본 시스템은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지 않는다. 즉, 1주가 1표의 가치를 가질 뿐이다. (아래 표 참고)

[표] 한·미 상장 시장의 거버넌스 및 투자 환경 비교

구분

미국 뉴욕증시(NYSE)

한국 자본시장(KOSPI)

경영권 방어 기제

차등의결권 인정 (쿠팡 1주당 29표)

차등의결권 불허 (1주 1표 원칙 고수)

성장 기업 가치 평가

적자 성장 기업에 대한 유연한 가치 평가 체계

수익성 지표 중심의 보수적 상장 문턱

자본 조달 규모

글로벌 거대 자본 유입 (상장 시 5조 원 확보)

국내 시장 규모에 따른 대규모 조달의 한계

법적 예측 가능성

델라웨어법 등 검증된 경영 전략 활용 가능

규제 불확실성 및 지배구조 규제 강화 추세

그 뿐만 아니다.

미국 증시는 적자 기업이라도 미래 성장성(Growth)이 입증되면 상장을 허용하는 유연한 평가 체계를 갖추고 있다.

누적 적자가 수조 원에 달했던 쿠팡이 상장 직후 시가총액 약 500억 달러(55조 원)를 기록하고, 이를 통해 5조 원 규모의 실탄(Capital)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시장의 규모와 자본 효율성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쿠팡이 한국 시장에 상장했다면, 창업주의 경영권은 위태로웠을 것이며 조달 가능한 자본의 규모 또한 극도로 제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도적 차이가 한국이냐 아니면 미국이냐라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를 넘어, 국내 유망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 기술을 가지고도 해외 상장을 추진할 수 밖에 없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차등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쿠팡이 우리 나라가 아닌 미국 상장을 선택한 이유는 차등 의결권의 미인정, 대규모 자본 조달의 용이성 말고도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사전 지정제, 소상공인 노출 순위 결정에 관한 알고리즘 문제 등등 다양한 제도적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차등 의결권이 아닐 수 없다. 충분한 비전과 사업 가능성이 있다면 다른 문제는 어느 정도의 절충이나 타협으로도 커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요한 차등 의결권을 우리나라가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 세습 및 남용 우려

가장 큰 이유는 차등의결권이 재벌(대기업 집단)의 경영권 승계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시민단체와 반대론자들은 창업주나 지배주주가 적은 지분으로도 기업을 지배할 수 있게 되면, 이것이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세습)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및 투명성 저하 가능성

이미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수 지분으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문제가 있는데, 차등의결권이 이를 더 심화시키고 지배주주의 권한만 강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무능하거나 부도덕한 경영진이 교체되지 않고 계속 기업을 운영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 최근의 변화 >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미국 상장 사례 등을 계기로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2023년 4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개정되면서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제한적으로 복수의결권 발행이 허용되었다.

다만, 이는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보통주로 전환되어야 하는 등 엄격한 제한이 있어, 쿠팡과 같은 대규모 상장 기업이 이를 활용하기에는 여전히 제약이 따르는 '반쪽짜리' 제도라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재명 대통령, “오늘이 국가 창업 시대, 고용보다는 창업으로 국가의 중심을 바꾸는 대전환의 첫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앙일보, 2026. 1. 30.>

대통령이 청와대 전략회의에서 "이제는 고용 보다 창업으로 전환할 때"라고 말한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선언이다.

왜 우리라고, 미국의 메타나 애플, 구글이나 팔란티어,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좋은 줄 모르겠는가. 그러한 유니콘 기업들이 고용을 이끌고, 국가 경제를 이끈다는 것을 누가 모를까.

다만 우리에겐 그런 멋진 성공 신화가 나오지 못하게(?) 하는 '법'과 '규제'가 있었을 뿐이다. 물론 그 법과 규제도 다 일리가 있다.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하고 기업을 승계했던 과거 일부 재벌들의 업보인 이유다.

하지만, 이제는 사고의 전환을 시도해 볼만한 때이기도 하다. 유망한 스타트업이 국내 증시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창업주의 혁신 의지를 뒷받침할 제도적 보완이 더 필요하다.

예를 들어 창업주가 경영권 방어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 투자를 지속할 수 있도록 비상장 벤처를 넘어 상장 후 일정 기간(예: 10년 일몰제 등)까지 차등의결권을 보장하는 파격적인 입법도 검토해야 한다. 또한 적자 성장 기업이라 해도, 국내 시장에서도 충분한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상장의 기회를 부여할 필요도 있다.

쿠팡은 정말 밉고 얄미운 (심지어 못된) 미국 기업이 맞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강력한 유니콘 기업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쿠팡을 못잡은 것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쿠팡과 같은 혁신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유출되지 않도록 우리도 이제 제도의 그릇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쿠팡은 아쉽지 않다. 하지만 그 혁신을 품지 못했음은 면밀히 살펴야한다. (이미지생성 : 노트북LM)
쿠팡은 아쉽지 않다. 하지만 그 혁신을 품지 못했음은 면밀히 살펴야한다. (이미지생성 : 노트북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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