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지식



지성과 지식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지성(知性)은 지각된 것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정신 작용이다. 넓은 뜻으로는 지각이나 직관(直觀), 오성(悟性) 따위의 지적 능력을 통틀어 이른다. 심리학에서는 새로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에, 맹목적이거나 본능적 방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지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그 상황에 적응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성질을 말한다.

그에 반해 지식(知識)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의미한다.
(표준국어대사전 '23. 12. 21. 검색)

 

사전적 정의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지성과 지식은 비슷하지만 같은 개념이 아니다. 지성은 내면에서 본래 갖추고 있는 본성이다. 그러므로 본성 성(性)이 이름에 있다. 그에 반해 지식은 외부에서 가져온 인식과 이해이다. 그래서 알 식(識)을 사용한다.

지성은 우리의 본성 일부이기 때문에, 사람의 성품을 의미하는 인성(人性)의 다른 면이기도 하다. 지각된 것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새로운 인식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투영되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은 인성을 갖추고 있지만 그 수준에 따라 내면에 쌓이는 지적 세계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서로 다른 내면에서 서로 다른 사고와 행동이 비롯되는 것은 당연하다.

지성과 지식은 삶의 필수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지성의 바탕 위에 지식이 쌓여야한다는 점에서는 위상이 다르다. 지식이 많지 않아도 지성이 돋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동시에 지식이 많다고 해서 지성이 반드시 뛰어난 것은 아니다. 

지성은 원래 내면의 있는 지(知)이므로, 개인적인 욕망과 왜곡된 선입견이 본래의 지를 가리는 것을 끊임없이 막아야 한다. 왕양명은 누구나 갖추고 있는 내면의 지를 양지(良知)라고 하였고, 양지를 밝히려는 노력을 치양지(致良知)라고 하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知)을 행할 때 비로소 진짜 아는 것(知)이다. 그래서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또한 지성을 깨우치는 일은 결국 자신의 일이며, 특별한 기회로 이루어지는 이벤트가 아닌 일상 생활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상마련(事上磨鍊)이다.

지식은 외부의 지(知)이므로, 끊임없이 공부해서 습득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즉 먼저 공부해야만 숙지해서 써먹을 수 있다. 이것은 주자학의 '먼저 배우고 그 다음에 실천한다'는 선지후행(先知後行)의 이치에 부합한다. 주자는 성인이 남긴 경전에서 세상의 모든 이치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물론 주자는 외부의 지를 통해 누구나 이미 갖추고 있는 내면의 지를 깨우친다는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경전 공부에서 자기 수양의 근거를 찾는다), 지식이 외부에서 얻는 지라고 한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굳이 경전에 국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교양서, 전문서적, 유튜브, 블로그 등의 지적 원천을 통해 우리는 지식을 습득하고 익힐 수 있다.

다시 언급하지만 지성과 지식은 삶에 있어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의 개별 사고와 행동은 절대적으로 지성으로만 움직이거나 지식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지성을 깨우치는 것도,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모두 필요하다. 다만 철학적으로 볼 때 전자의 접근은 양명의 지행합일, 치양지의 원리가 부합하고, 후자는 주자의 선지후행, 사물에 다가가 이치를 찾는 방식(卽物而窮其理)이 좀 더 설득력있는 측면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하게 참고할만하다

코칭은 대상자 스스로 알고 있는 답을 찾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이다. 스스로 알고 있는 답을 찾는 과정이므로 내면의 지를 찾는 지성의 추구에 가깝다. 그리고 실행에 옮기도록 돕는 것은 내면의 지를 행동에 부합하게 돕는 지행합일의 협력이다. 이처럼 양명학에서는 코칭의 철학적 근거를 풍부하게 발견할 수 있다. 양명학과 코칭을 심도있게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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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2. 21.까지 총 0회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