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겨울, 그리고 '산 자'들의 연대: '왕좌의 게임'이 주는 경고

모두가 꿈꾸는 철왕좌(Iron Throne). 하지만 먼저 겨울을 이겨내고 살아남아야 한다.
모두가 꿈꾸는 철왕좌(Iron Throne). 하지만 먼저 겨울을 이겨내고 살아남아야 한다.

국민의힘 초·재선 의원 25명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을 맞아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자,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습니다. 박 의원은 이들 25명의 의원이 반헌법적 계엄을 사죄하고 윤석열과의 단절을 약속한 것을 높이 평가하며, "역사와 국민은 25분의 의원님들을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머니투데이, 2025. 12. 3., 與박지원 "계엄 사과한 25명 국민의힘 의원, 역사와 국민이 기억할 것">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은 가상의 대륙 웨스테로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대한 서사시다. 이 이야기의 표면을 장식하는 것은 철 왕좌(Iron Throne)를 차지하기 위한 일곱 왕국 대영주들의 치열한 암투다. 라니스터, 스타크, 타르게리옌 등 각 가문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때로는 무자비한 권모술수를, 때로는 막강한 군사력과 재정적 힘을 동원하여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피로 맺어진 혈맹조차 권력 앞에서는 허무하게 무너지는 이 비정한 '왕좌의 게임'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정치의 가장 적나라한 축소판처럼 보인다. 시청자들은 그들이 벌이는 정치적 수 싸움과 반전에 열광하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어 왕좌에 앉을지를 숨죽여 지켜본다.

겨울이 온다(Winter is coming)

그러나 이 드라마가 단순한 정치 사극을 넘어 거대한 철학적 함의를 갖는 지점은, 이 모든 권력 투쟁이 벌어지는 무대 뒤편, 북부의 거대한 얼음 장벽 너머에 있다. 칠왕국의 영주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동안, 장벽 너머에서는 진짜 공포가 다가오고 있다. 바로 생명이 없는 존재들, 죽은 자들의 군대를 이끄는 '나이트 킹(Night King)'과 그의 수하 '화이트 워커(White Walkers)'들이다. 이들에게는 가문의 영광도, 정치적 협상도, 재물의 욕망도 통하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장벽 이남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말살이다. 그들은 죽은 자를 되살려 자신의 군대인 '와이트(Wight)'로 만들고, 칠왕국의 모든 기억과 온기를 지워버리려 한다. 북부의 파수꾼들은 이 다가오는 파멸을 감지하고 끊임없이 경고를 보낸다. "겨울이 온다(Winter is coming)." 이 서늘한 문장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는 절대적인 공멸의 위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묵시록적인 예언이다.

화이트 워커와 와이트를 이끄는 나이트 킹(Night King). 이들은 '죽은 자'들이다.
화이트 워커와 와이트를 이끄는 나이트 킹(Night King). 이들은 '죽은 자'들이다.

드라마 속 현자들은 말한다. 인간들끼리 벌이는 왕좌의 게임은 오직 '산 자(The Living)'들이 존재할 때나 가능한 것이라고. 화이트 워커들의 침공 앞에서는 라니스터의 황금도, 스타크의 명예도 무의미하다. 인간과 화이트 워커는 공존할 수도, 공생할 수도 없다. 그것은 가치의 대결이 아니라 '존재' 대 '비존재', '생명' 대 '죽음'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 칠왕국의 영주들은 서로를 향해 겨누던 칼을 거두고, 오직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하나의 방패 아래 뭉쳐야만 했다. 이것이 '왕좌의 게임'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서늘하고도 묵직한 교훈이다. 진정한 위기 앞에서, 우리는 적과 동지의 개념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진보와 보수라는 '산 자'들의 게임

나는 이 드라마의 설정에서 지금 우리가 처한 민주주의의 현실을, 그리고 진정한 '공생(Symbiosis)'의 의미를 뼈저리게 되새긴다.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은 마치 칠왕국의 대영주들처럼 치열하게 경쟁한다. 때로는 격렬하게 대립하고, 상대의 정책을 비판하며 정권을 잡기 위해 다툰다. 그러나 이 다툼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라는 헌법적 테두리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는 '산 자'들끼리의 게임이다. 공생 시스템 이론에서 말하듯, 건강한 생태계는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아오르듯, 민주주의 역시 보수의 안정과 진보의 역동성이라는 두 날개가 공존할 때 비로소 높이 비상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건강함을 증명하는 지표다. 이들은 서로를 억눌러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공생의 파트너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켜온 민주주의의 '왕좌의 게임'이다.

2025. 1. 19.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서울 서부지법을 부수던 자들은 민주주의를 해치는 '화이트 워커'가 아닐까
2025. 1. 19.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서울 서부지법을 부수던 자들은 민주주의를 해치는 '화이트 워커'가 아닐까

하지만, 민주주의의 영토에도 '화이트 워커'와 같은 존재들이 있다. 이들은 다양성을 혐오하고,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부하며, 오직 폭력과 강압으로 체제를 전복하려 한다. 극단적인 전체주의, 헌법을 유린하는 독재적 시도, 국민의 기본권을 무력으로 짓밟으려 하는 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상대방을 경쟁자가 아닌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한다. 마치 왕좌의 게임 속 화이트 워커들이 생명을 죽여 시신을 자기편으로 만들듯, 이들은 민주 시민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맹목적인 추종을 강요하며 민주주의의 생명력을 앗아가려 한다. 이들과는 공존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포용해야 할 다양성의 범위에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려는 자유'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생이 아닌 기생이며, 끝내는 숙주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암세포와 같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화이트 워커'들

최근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12.3 비상계엄' 사태는 바로 이 '민주주의의 겨울'이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를 보여준 섬뜩한 사건이었다. 헌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선포된 계엄은, 단순히 정권의 실책이나 정책적 실패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은 칠왕국의 성벽을 넘으려 했던 화이트 워커의 침공처럼, 우리 사회가 피땀 흘려 쌓아 올린 헌법과 민주주의라는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키려 한 '반(反)생명'적 시도였다. 국회가 무력으로 봉쇄되고, 국민의 대표들이 체포의 위협에 떨었던 그 밤, 우리는 민주주의가 질식할 수 있다는 공포, 즉 '정치적 겨울'의 냉기를 피부로 느꼈다. 그것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존립에 관한 문제였다.

이 엄혹한 '겨울'의 초입에서, 국민의힘 소속 의원 25명이 보여준 행보는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안철수, 김성원, 이성권, 김용태 등 25명의 여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소속 정당이 배출한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대해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했다. 그들은 "당시 집권 여당의 일원으로서 계엄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하며, "비상계엄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짓밟은 반헌법적 행동"이라고 명확히 규정했다. 이것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다. 왕좌의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가문의 깃발 아래 서 있던 기사들이, 성벽 너머에서 몰려오는 죽음의 군대를 목격하고는 가문의 이익보다 '생존'이라는 대의를 선택한 순간과 같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정파적 이익(왕좌의 게임)보다, 헌법과 민주주의라는 토대(산 자들의 세상)를 지키는 것이 우선임을 선언한 것이다.

12.3 계엄의 세력에 맞서 '산 자'들이 함께 싸워야한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원로인 박지원 의원이 "양심이 살아있는 25분의 의원들께 박수를 보낸다. 역사와 국민이 기억할 것"이라고 화답한 장면은, 우리가 맞이한 위기 앞에서 정치가 나아가야 할 '공생의 모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평소라면 서로 날을 세우며 다투었을 여야의 정치인들이, '민주주의 파괴'라는 공통의 적 앞에서는 기꺼이 손을 잡고 연대하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산 자'들의 연대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그 이전에 모두가 민주주의라는 헌법 기관의 구성원이다.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그 왕좌가 놓인 마루가 튼튼할 때나 의미가 있다. 마루가 무너지고 집이 불타는데, 누가 상석에 앉을지를 두고 다투는 것은 공멸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12.3 사태는 우리에게 분명한 경고를 남겼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키고 가꾸어야 할 깨지기 쉬운 그릇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그릇을 깨뜨리려는 위협은 언제든, 예고 없이, 가장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들이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25인의 당시 여당(국민의 힘) 의원들과 이에 호응한 야당 의원들이 보여준 그 짧은 순간의 연대를 더 크고 단단한 흐름으로 만들어야 한다.

공생 시스템 주역 모델(Symbiotic System Iching Model, SSIM)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은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의 하괘(기반)가 흔들리는 위기 상황이다. 이때 필요한 리더십(주효)은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라는 다양성을 '헌법 수호'라는 하나의 거대한 환원(상괘)으로 승화시키는 통합의 리더십이다. 드라마 속 존 스노우가 와일들링과 나이트 워치, 북부의 영주들을 하나로 모았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파를 초월한 '민주주의 수호 연대'다.

지금은 '왕좌의 게임'을 잠시 멈추고 겨울을 이겨내야 할 때

우리가 싸워야 할 진짜 적은 내 옆에 있는 정적(政敵)이 아니다. 우리의 적은 헌법을 무시하고, 국민의 입을 막으며,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화이트 워커'들과 그들에 동조하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이들은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죽여, 획일화되고 통제 가능한 시신의 제국을 만들려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뭉쳐야 한다. 서로의 다름을 잠시 내려놓고, 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맞서 어깨를 걸어야 한다. 그날 밤 국회 담장을 넘으며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시민들의 열기, 그리고 뒤늦게나마 잘못을 참회하고 헌법의 편에 선 정치인들의 용기가 바로 그 연대의 시작점이다.

겨울이 왔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단단히 뭉쳐 있는 한, 그리고 '산 자'로서의 존엄과 다양성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의 봄은 반드시 다시 찾아올 것이다. 왕좌의 게임은 잠시 멈춰도 좋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함께, 이 지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살아남아야 할 때다.


The White Walkers of Democracy: Unity Beyond the Game

This column compares the rivalry between Progressive and Conservative parties to the 'Game of Thrones' power struggle, defining them as 'The Living' who must coexist for a healthy democracy. The true existential threat, or the 'White Walkers,' are the anti-constitutional forces, exemplified by the recent 12.3 Martial Law attempt. The apology issued by 25 ruling party lawmakers following the incident symbolized a crucial political awakening: Partisan loyalty must yield to the defense of the Constitution when 'Winter is Coming.' True democratic symbiosis demands that 'The Living' unite across the political spectrum to fiercely guard the constitutional foundation against all forms of anti-democratic extremism.

Keywords: Democracy, Game of Thrones, White Walkers, Martial Law, Constitutionalism, Symbiosis.


#미드 #왕좌의게임 #화이트워커 #설귀 #민주주의대반민주주의 #공생시스템

#251264

Read more

아컴호러 3판(ARKHAM HORROR 3rd) 영문버전

<아컴호러 3판> 혼돈의 아컴 시에서 배우는 공생의 미학

아컴호러 3 (Arkham Horror: Third Edition) 보드게임 아컴호러 3판은 H.P.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1~6인용 협력 보드게임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조사자가 되어 매사추세츠주 아컴 시를 돌아다니며, 다가오는 고대의 존재(Great Old One)의 위협을 막아내야 합니다.가장 큰 특징은 시나리오 기반으로 게임이 진행된다는 점이며, '파멸 토큰'

비상 계엄 1주년을 맞은 대한민국 국회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 공생 시스템을 지켜낸 시민들의 리더십 (택천쾌)

이재명 대통령은 성명에서 "맨주먹으로 계엄을 막아낸 위대한 국민은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또한 당시 시민의 저항을 '빛의 혁명'으로 명명하며 12월 3일을 '국민주권의 날'로 지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쿠데타 가담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과 함께 '정의로운 통합'을 이뤄내겠다고 강조했습니다. <

<주역 이야기 02> 팔괘(八卦), 세상을 담는 주역의 단어

지혜나무숲이 제안하는 '공생 시스템 주역 모델(Symbiotic System Iching Model, SSIM)'은 『주역(周易)』의 철학과 논리를 바탕으로 공생 시스템을 기술하므로, 모델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주역』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혜나무숲에서는 쉽고 재미있는 '주역 이야기'를 기회가 될 때마다 이어갈 생각이다. 불확실한

이반 크람스코이 작 "낯선 여인의 초상"(1883). 안나 카레니나를 모델로 그렸다고 한다.

'지킨다'는 것에 대하여

연매출 50조 원 규모의 국내 1위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에서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상 최대 보안 사고가 발생하며 허술한 보안 관리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연매출의 0.2%에 불과한 정보보안 투자 비중, 5개월간 사고를 인지하지 못한 늦장 대응, 그리고 퇴사한 중국인 직원의 소행 가능성 등 내부 관리 시스템의 문제점이 지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