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킨다'는 것에 대하여
연매출 50조 원 규모의 국내 1위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에서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상 최대 보안 사고가 발생하며 허술한 보안 관리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연매출의 0.2%에 불과한 정보보안 투자 비중, 5개월간 사고를 인지하지 못한 늦장 대응, 그리고 퇴사한 중국인 직원의 소행 가능성 등 내부 관리 시스템의 문제점이 지적됩니다.
<뉴스토마토, 2025. 12. 1. "연매출 50조 쿠팡, 보안투자 비중은 고작 0.2%">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는 쟁취의 기록이다. 더 넓은 영토, 더 많은 자본, 더 높은 지위, 그리고 혁신적인 기술을 얻기 위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앞을 향해 달린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성장’과 ‘확장’은 언제나 가장 매혹적인 슬로건이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전년 대비 매출을 경신하는 일은 언제나 경영진과 주주들을 열광시킨다. 반면, 이미 가진 것을 지키는 일, 즉 ‘수성(守城)’은 지루하고 티가 나지 않는다. 특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목표인 보안이나 리스크 관리는 종종 ‘비용’으로 치부되거나, 성장을 가로막는 성가신 규제쯤으로 여겨지곤 한다.
불행은 '단 하나를 지키지 못해서' 찾아온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인정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쟁취하는 것보다 이미 가진 것을 온전히 지켜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렵고 고단하며, 무엇보다 치명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은 자신의 투자 제1원칙을 “절대 돈을 잃지 말라(Never lose money)”라고 천명했다. 제2원칙은 “제1원칙을 절대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라는 조언이 아니다. 50%의 손실을 입으면 본전을 찾기 위해 100%의 수익을 내야 한다는 냉혹한 산술적 진리, 즉 한 번 무너진 토대를 복구하는 데에는 쌓아 올릴 때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 옛말에 “부자가 3대를 가지 못한다”는 말 또한, 부를 축적하는 재주와 그것을 지켜내는 지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능력임을 시사한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의 격언이 수천 년을 넘어 오늘날의 최첨단 기업 환경에서도 유효한 이유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그 유명한 첫 문장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라고 썼다. 이 문장은 역설적으로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강, 재정, 인간관계, 신뢰 등 수많은 요소 중 단 하나라도 삐그덕거려서는 안 된다는 ‘지킴’의 미학을 꿰뚫고 있기도 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고객의 방대한 개인정보, 미래 먹거리가 될 핵심 기술, 쌓아 올린 브랜드 가치, 유능한 인재, 그리고 시장의 신뢰까지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지키지 못했을 때, 기업은 저마다의 이유로 ‘안나 카레니나’ 식의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불행은 ‘모든 것을 갖추지 못해서’가 아니라 ‘단 하나를 지키지 못해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민국을 강타한 일련의 사태들은 우리가 이 ‘지킴’의 가치를 얼마나 가볍게 여겨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뼈아픈 자화상이다. 국가 행정망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단순한 물리적 재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 시스템의 안정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신뢰가 훼손된 사건이었다.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타버린 장비만이 아니라, 국민의 데이터를 안전하게 지켜야 할 국가 기관의 안일한 방재 의식이었다.
업계 1위들의 보안사고는 우연인가 필연인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민간 부문, 그것도 업계 1위를 호령하는 기업들에서 연이어 터져 나온 대규모 보안 사고들이다. 통신 업계의 절대 강자 SK텔레콤과 이커머스 시장의 지배자 쿠팡에서 발생한 고객 정보 유출 사건은 우리 사회의 보안 불감증이 임계점을 넘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로켓배송’이라는 혁신으로 유통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자부하던 쿠팡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쿠팡은 연 매출 50조 원을 바라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정보보안 부문에 대한 투자 비중은 전체 매출의 0.2% 수준에 불과했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통상 매출의 1% 이상, 많게는 수 퍼센트를 보안에 투자하는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수치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무려 3,370만 명에 달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경제활동인구 전체에 육박하는 숫자다. 더욱이 이 유출 사고가 중국 국적의 전직 직원에 의해 저질러졌으며, 회사가 이를 인지하는 데 5개월이나 걸렸다는 사실은 쿠팡의 보안 시스템이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음을 방증한다. 50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동안, 그 거대한 성을 지키는 빗장은 녹슬어 있었고 경비병은 자리를 비웠던 셈이다.
SK텔레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통신사는 국민의 가장 민감한 통신 기록과 위치 정보를 다루는 곳이다.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1위 기업이 해킹이나 내부자 리스크에 뚫렸다는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효율과 비용 절감을 외칠 때마다 경영진의 계산기에서 가장 먼저 삭제되는 항목이 ‘보안’과 ‘유지보수’였던 것은 아닐까. 화려한 마케팅과 신규 가입자 유치 전쟁에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 정작 그 고객들의 정보를 지키는 금고지기에게는 인색했던 결과가 오늘의 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지킨다'는 것은 생존 철학이자 윤리 의식의 문제
기업들은 사고가 터질 때마다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다"며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그 사과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 없이 땜질식 처방에 그치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방화벽을 하나 더 설치하거나 보안 규정을 강화하는 실무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기업의 생존 철학이자, 고객과의 약속을 목숨처럼 여기는 윤리 의식의 문제다.
우리는 흔히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격수에게 환호한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는 골을 많이 넣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골문을 지키는 수비수가 무너지면 아무리 많은 골을 넣어도 경기는 패배로 끝난다. 지금 우리 사회와 기업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공격 전술이 아니라, 뚫리지 않는 탄탄한 수비 전략이다. 비용 절감이라는 미명 아래 '지키는 이슈'를 뒷전으로 미루는 경영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을 짓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 국가와 기업은 생존 전략의 축을 옮겨야 한다. 맹목적인 '확장 위주'의 전략에서 '확장과 수비의 균형'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사실상 전 국민의 개인 정보가 털린 쿠팡 사태와 국가 기관의 화재는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일지 모른다. 고객의 신뢰, 핵심 기술, 그리고 기업의 평판은 한 번 잃으면 100%가 아니라 200%, 300%의 노력을 쏟아부어도 되찾기 어렵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되찾지 못할 수도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경고하듯, 불행은 예고 없이 가장 약한 고리를 타고 들어온다. 지금 당장,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무엇을 투자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빗장을 단단히 거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혁신의 시작이다.
The Peril of Pure Growth: Why Defense is the New Offense
The article warns that prioritizing expansion over protecting assets (data, trust) is a fatal flaw, citing Warren Buffett’s "don't lose principal" rule. Catastrophic failures like the NIRS fire and the Coupang data leak (33.7M users, 0.2% security spend) show top entities failing their most basic duty. Sustainable survival demands urgently balancing aggressive growth with robust defense.
Keywords: Corporate Strategy, Data Security, Coupang Breach, Risk Management, N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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