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받은 일본 과학의 '위대한 축적' (산천대축)

지금의 일본 기초과학은 수십년에 걸친 다양한 연구에 대한 기다림의 결과다 (Google AI Studio 생성)
지금의 일본 기초과학은 수십년에 걸친 다양한 연구에 대한 기다림의 결과다 (Google AI Studio 생성)

2025년 10월의 가을바람과 함께 들려온 일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이제 더 이상 '기적'이나 '이변'으로 불리지 않는다. 오사카 대학의 사카구치 시몬 석좌교수가 10월 6일 노벨 생리의학상을 거머쥐었고, 불과 이틀 뒤인 10월 8일에는 교토 대학의 기타가와 스스무 교수가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호명되었다. 매년 10월이면 일본 열도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세계의 시선, 특히 한국의 시선은 경이로움을 넘어 부러움을 감추기 어렵다. 여기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일본을 이토록 강력한 기초과학의 강국으로 만들었는가.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일본인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래, 2000년대 들어서만 20명이 넘는 수상자를 배출하며 2025년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이 거대한 흐름을 단순히 '운'이나 '경제력'만으로 설명하기엔 분명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공생 시스템 주역 모델(SSIM)'의 렌즈를 통해 끊임없이 노벨상을 배출하는 일본 과학계의 심층 구조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하늘의 강건함을 산으로 감싸 안다 (山天大畜)

일본의 막강한 기초과학 생태계는 결론부터 말하면 하늘의 강건함을 산의 묵직함으로 품어낸 괘, 바로 '산천대축(山天大畜)'의 모습을 지녔다. 일본 기초과학의 저력이자 가장 밑바닥에서 꿈틀대며 에너지를 공급하는 하괘(下卦)는 바로 '건(乾)', 즉 하늘이다. 주역에서 건괘는 '자강불식(自强不息)', 즉 쉬지 않고 스스로 굳세게 나아가는 창조적 에너지를 상징한다. 이는 일본 연구 현장에 뿌리 깊게 박힌 특유의 '장인 정신(모노즈쿠리)'과 맥을 같이한다. 일본의 연구자들은 세류에 휩쓸리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에 돈이 되지 않거나,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연구라 할지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수십 년간 한 우물을 파는 집요함을 보인다. 그래서 일본에서 연구되는 과학 분야는 매우 넓고 다양하다.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혼조 다스쿠 교수가 "교과서를 믿지 마라, 내 눈으로 확인한 것만 믿어라"라고 일갈했던 것처럼, 일본의 과학자들은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고 자기식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헤소마가리(괴짜)' 기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연구실의 불을 밝히는 이 자발적이고 강건한 하늘의 에너지가 바로 일본 과학을 지탱하는 하부 구조의 핵심이다.

산천대축(山天大畜) - 산이 하늘을 품었다
산천대축(山天大畜) - 산이 하늘을 품었다

그러나 하늘의 에너지가 강하다고 해서 모두가 성취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그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도록 담아낼 그릇이 필요하다. 일본 과학의 성공 비결은 바로 이 강렬한 하늘의 에너지를 상괘(上卦)인 '간(艮)', 즉 산이 감싸주고 있다는 점에 있다. 간괘는 '그침'과 '머무름'을 의미한다. 이는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일본 사회의 시스템과 문화를 상징한다. 기초과학은 당장 내일의 빵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연구자가 실패를 거듭하고, 당장의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준다.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 속에서도 일본은 기초과학 예산만큼은 줄이지 않고 오히려 늘려왔다. 마치 거대한 산이 흙과 나무를 품듯, 일본 사회는 연구자들의 괴짜 같은 호기심과 무수한 실패의 기록들을 껴안았다. 밖으로 발산하려는 건(하늘)의 기운을 함부로 새지 않게 간(산)이 눌러 담아 내부에 축적시키는 형상, 이것이 바로 주역에서 말하는 '산천대축(山天大畜)'이다. '크게 쌓는다'는 뜻의 대축 괘는 일본이 하루아침에 노벨상을 받아낸 것이 아니라, 수십 년, 길게는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지식과 노하우, 그리고 실패의 경험을 산처럼 쌓아 올린 결과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묵묵하게 지켜봐준 비전의 리더십 (5효)

그렇다면 이 거대한 '축적의 시스템'을 가능하게 했던 결정적인 리더십은 무엇이었을까. SSIM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을 이끈 힘은 시스템의 비전을 제시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오효(五爻)의 리더십, 즉 '비전의 리더십'이 주효(主爻)로 작용한 결과다. 오효는 괘의 중심이자 군주의 자리다. 일본 정부는 연구자들을 방임하거나 억압하는 대신, 명확하고 담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2001년 일본 정부가 제2기 과학기술기본계획을 발표하며 "향후 50년 내에 노벨상 수상자 30명을 배출하겠다"라고 선언했을 때, 세계는 비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호기가 아니었다. 정부라는 오효의 리더십은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하는 4효(실무자)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현장의 연구자들(하괘)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안정적인 토대를 제공했다.

산천대축(山天大畜) 육오
산천대축(山天大畜) 육오

거세한 돼지의 어금니므로 길하다.

豶豕之牙 吉. (山天大畜 六五)

산천대축 괘에서 오효의 역할은 '분시지아(豶豕之牙)', 즉 '거세된 돼지의 어금니'로 비유된다. 이는 날뛰는 멧돼지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연구자들의 기질을 강제로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야성을 적절히 제어하고 길들여 공동체에 이로운 방향으로 쓰이게 만드는 고도의 통치술을 의미한다. 일본의 리더십은 연구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되, 그 방향이 국가의 지적 자산 축적으로 이어지도록 정교하게 설계했다. 사카구치 시몬과 기타가와 스스무의 2025년 수상 역시 이러한 장기적인 안목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이 연구를 시작했던 수십 년 전, 그 가치를 알아보고 지원을 끊지 않았던 리더십의 결단이 오늘날 꽃을 피운 것이다.

결국, 2025년 일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현장의 치열한 열정(건)을 사회적 인내(간)로 감싸 안아 '위대한 축적(대축)'을 이루어낸 시스템의 승리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흔들리지 않도록 수십 년 앞을 내다보며 중심을 잡았던 '오효'의 리더십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우리는 종종 '패스트 팔로워'의 성공 방정식에 익숙해져, 기다림과 축적의 가치를 잊곤 한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는 명확히 말해준다. 하늘을 뚫을 듯한 열정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품어 안을 산과 같은 인내와, 그 산을 지키는 혜안을 가진 리더십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인류 지성의 금자탑은 쌓아 올려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성과를 재촉하는 채찍질이 아니라, 괴짜들의 엉뚱한 상상을 산처럼 묵묵히 품어줄 수 있는 '대축'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Japan's 'Great Accumulation' of Nobel-Winning Science

Japan's repeated Nobel success, highlighted by Shimon Sakaguchi (Medicine) and Susumu Kitagawa (Chemistry) in October 2025, is analyzed through the SSIM/I Ching Model as Hexagram 26, Great Accumulation (山天大畜). The strength lies in the Heaven (乾), representing the researchers' 'Mono-zukuri' spirit and tenacious pursuit of curiosity, which is contained and nurtured by the Mountain (艮), symbolizing the long-term patience and non-interference of Japanese society. This system was guided by the Fifth Line (五爻) Visionary Leadership, which set the audacious '30 Laureates in 50 Years' goal and consistently maintained foundational support, allowing energy to accumulate into global scientific prow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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