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생존 전략과 제언 (택수곤)
트럼프 미 행정부가 러시아와 협의한 영토 양보 및 병력 축소 등이 담긴 종전안 수용을 우크라이나에 압박하고 있다. 한편 전선에서는 러시아의 공습과 우크라이나의 에이태큼스 미사일 공격 등 치열한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5. 11. 20. "새 종전안으로 우크라이나 압박하는 트럼프…전선에선 공방 격화">
2025년 11월, 우크라이나의 하늘과 땅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하늘에서는 미국이 제공한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이 굉음을 내며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고 있지만, 땅 위에서는 워싱턴에서 날아온 ‘28개 조항의 종전안’이라는 차가운 문서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책상을 짓누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더 이상의 지원은 없으며, 영토를 내어주고 군대를 줄여서라도 전쟁을 끝내라는 것이다. 전선에서는 포화가 빗발치지만, 외교의 연못은 빠르게 말라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물이 없는 연못에서 고통받는 물고기 (澤水困)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공생 시스템 주역 모델(SSIM, Symbiotic System Iching Model)’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우크라이나가 처한 현실은 ‘택수곤(澤水困)’의 괘상으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주역의 47번째 괘인 택수곤은 ‘연못(澤) 아래로 물(水)이 빠져나가 바닥이 드러난 형국’을 의미한다. 먼저 시스템의 원동력이 되는 하괘인 물(감, 坎)은 험난한 구덩이 속에 빠져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우크라이나의 내부 현실이다. 환원을 상징하는 상괘인 연못(태, 兌)은 우크라이나를 지탱해주던 서방 세계, 특히 미국의 지원과 외교적 연대를 상징한다.

전쟁 초반 우크라이나가 빠진 험난한 어려움(坎)에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과 유럽은 군수물자와 생필품을 적극 지원하였다(澤). 전방위적인 도움을 호소한 우크라이나의 다양한 노력이 서방의 실질적인 도움으로 환원된 것이다. 하지만 뒤집을 수 없는 전황과 기약없는 전쟁이 이어지면서 밑빠진 독의 물처럼 우방의 지원물량은 곧 소진되었다(澤水困). 결국 지원은 메말라가고(澤水困), "우크라의 자유를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 "러시아의 진격을 막겠다"는 유럽국가들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만 남게 되었다(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영토를 잃고 밀리는 형국으로 국가 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미국의 군사 지원은 트럼프의 재집권과 함께 곧 바닥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달한 종전안은 사실상 연못의 물이 다 말랐음을 알리는 통지서와 같다. 돈바스를 포기하고 나토 가입을 유보하라는 굴욕적인 요구는, 물이 없는 연못에서 물고기가 겪는 고통 그 자체다.
코와 발이 베여도 지금은 수용해야 할 때 (九五의 리더십)
이러한 ‘곤(困)’의 상황에서 공생 리더가 취해야 하는 행동 강령은 무엇인가. 택수곤 괘사는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는다(유언불신, 有言不信)”고 경고한다. 지금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방을 향해 “정의로운 평화”를 호소하고 러시아의 야욕을 규탄해도, 그것이 실질적인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 국제 정치의 역학 구도가 말(언어)이 통하지 않는 궁지로 몰린 것이다.
이때 우크라이나가 선택해야 할 리더십은 택수곤의 구오(九五) 효가 주는 지혜에 있다. 구오 효사는 코와 발이 베어지고 주변에 자신을 지지할 사람도 없는 곤궁함을 얘기한다. 여기서 ‘코와 발이 베어지는 것’은 영토의 일부를 상실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우크라이나의 현재 상황과 정확히 같다. 그러나 SSIM은 이것이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시스템의 ‘코어(Core)’를 보존하기 위한 뼈아픈 구조조정의 과정임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일단 곤궁함을 견디고 나면 서서히 기쁨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기 때문이다.

코를 베이고 발꿈치를 베이며, 신하도 없어 곤궁하나, 이에 서서히 기쁨이 있을 것이다. 제사를 지냄이 이롭다.
劓刖 困于赤紱 乃徐有說 利用祭祀. (澤水困 九五)
지금 우크라이나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명분이나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구오의 ‘제사(祭祀)’는 형식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간절한 태도를 의미한다. 즉, 젤렌스키 리더십의 핵심은 당장의 영토 수복이라는 물리적 목표(형식)를 잠시 내려놓고,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명이라는 본질적 가치(내용)를 지켜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압박이 비록 부당하고 굴욕적일지라도, 지금은 그것을 수용하여 국가 시스템 전체가 붕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아내는 ‘전략적 인내’가 요구된다. 이는 비겁한 항복이 아니라,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씨앗을 남기는 숭고한 희생이다.
스스로 샘솟는 우물의 나라로 (水風井)
그렇다면 이 고통스러운 인내의 끝에 우크라이나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모습은 무엇인가. 택수곤의 다음 단계는 ‘수풍정(水風井)’, 즉 우물의 괘다. 연못(澤)은 외부의 비가 오지 않으면 마르지만, 우물(井)은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샘물이다. 이는 외부 의존적 시스템에서 내부 자립형 시스템으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의미한다.

수풍정 괘에서 하괘인 손(巽, 바람/나무)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 나무를 상징한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에 다시 나무를 심듯, 우크라이나는 뼈를 깎는 내부 개혁과 방위 산업의 자립화, 그리고 국민적 결속을 통해 국가의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한다. 상괘인 감(坎, 물)은 이제 위험이 아닌, 그 뿌리를 통해 길어 올린 생명수가 되어 백성을 먹인다.
요컨대, 우크라이나에게 전하는 SSIM의 분석은 명확하다. 지금은 곤궁함(택수곤)을 받아들이고 견뎌서, 내일의 우물(수풍정)을 준비해야 할 때다. 미국 대표단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 젤렌스키 대통령은 마른 연못을 탓하며 하늘을 원망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대신, 지금 겪는 수모를 훗날 우크라이나라는 거대한 우물을 파기 위한 터 닦기 작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당장은 돈바스를 잃고 군대를 축소해야 할지라도, 살아남은 국민과 보존된 주권이 있다면 그 우물은 언젠가 다시 맑은 물을 뿜어낼 것이다. 그것이 강대국의 논리에 짓눌린 약소국이 공생의 질서 속에서 끝내 살아남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젤렌스키의 어깨에 놓인 짐은 무겁지만, 그가 선택할 침묵과 인내는 훗날 가장 큰 웅변이 되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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