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 시스템의 '환원' 유형 8가지
「공생 시스템 주역 모델(SSIM)」은 복잡다단한 현대 조직과 공동체가 가진 공생의 역동성을 주역(周易)의 구조를 빌려 분석·진단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이 모델에서 시스템의 근본적인 활력과 잠재력은 하괘(下卦)로 상징되는 다양성에 의해 규정되며, 이 다양성이 선의의 경쟁과 상호작용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공동체 전체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결과이자 열매는 상괘(上卦), 즉 환원(還元, Contribution)으로 발현된다. 하괘의 잠재력이 아무리 강력해도, 그것이 상괘의 환원 단계에서 좌절되거나 왜곡된다면 그 시스템은 결국 위아래가 꽉 막힌 '비색(否)'의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진단하기 위해, 이 다양성이 성숙하여 어떤 모습의 환원으로 발전되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주역의 팔괘(八卦)가 상괘의 자리에 위치할 때, 공동체의 환원은 여덟 가지의 질적으로 다른 양태로 나타나며, 각각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지닌다.
건(乾) - 거대한 비전과 강력한 통제력으로 질서 확립

환원의 첫 번째 모습은 만물을 덮는 하늘, 건(乾, ☰)의 괘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공동체의 환원이 만물을 아우르는 거대한 비전과 강력한 통제력으로 질서를 확립하는 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乾)의 환원은 시스템의 에너지를 통일하고 집약하여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강력한 구심점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이는 조직 내의 분산된 기술(하괘의 다양성)을 하나로 묶어 인류사적 목표를 성취하는 대업으로 나타난다. 1960년대 미국의 아폴로 계획은 수많은 과학자와 기술자, 예산의 다양성을 '달 착륙'이라는 건(乾)의 거대 비전 아래 통일시키며 인류 문명사적 환원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건(乾)의 환원은 그 힘이 지나칠 때 독선적인 통제와 억압으로 변질된다. 하괘의 다양성을 단순히 리더의 의지 구현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고 외부 환경 변화를 무시한 채 일방적인 명령체계만 고집할 때, 시스템은 경직되고 유능한 인재들이 떠나 숨어버리는 천산둔(天山遯)의 비극을 맞을 수 있다.
곤(坤) - 다양성을 포용하여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토양 구축

건과 짝을 이루는 곤(坤, ☷)은 환원의 두 번째 양태, 즉 땅의 모습이다. 이때 공동체의 환원은 모든 다양성을 포용하여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토양을 구축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즉, 곤(坤)의 환원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직접적인 창조적 행위라기보다는, 그 창조적 다양성(하괘)이 무한정 발휘될 수 있는 환경적 토대를 제공하는 포용력이다.
주역의 가장 이상적인 괘 중 하나인 지천태(地天泰)는 내부의 강력한 활력(乾)이 곤의 수용성을 만나 위아래가 소통하는 모습이다. 고대 로마가 정복지의 이질적인 문화, 종교, 민족(다양성)을 흡수하고 시민권과 도로망(인프라)이라는 안정적인 토양으로 정착시킨 것은 곤의 긍정적인 환원 사례다. 이는 하괘의 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르는 대평성대를 의미했다.
반면 곤(坤)의 환원이 부정적으로 나타날 때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는 명분하에 시스템의 기준과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관성적인 절차와 조직의 무게가 새로운 시도(하괘의 震)를 짓눌러 결국 아무런 주도적인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무기력한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진(震) - 침체된 시스템을 일깨우는 급진적인 충격과 역동적인 혁신

세 번째 환원의 모습은 아래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진(震, ☳)의 충격적인 에너지다. 공동체의 환원은 침체된 시스템을 일깨우는 급진적인 충격과 역동적인 혁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진의 본질이다.
진(震)은 잠재력(하괘)을 단시간에 폭발시켜 판도를 뒤집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의 상징이다. 이는 내부의 명확한 지향점(離)이 진의 역동적인 힘을 만나 뇌화풍(雷火豊)과 같은 극도의 풍요를 이루는 것으로 발현될 수 있다. 자동차 산업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라고 볼 때, 현대 전기차 혁명을 이끌고 공동체 질서를 뒤흔든 테슬라의 사례는 침체된 제조업 시장에 진의 충격을 던져 거대한 환원을 이룬 예시다.
그러나 진(震)의 힘은 그만큼 위험하며, 공동체의 준비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하고 예측 불가능한 잦은 정책 변경이나 혁신 시도는 중뢰진(重雷震)와 같이 과도한 불안감과 피로만을 야기하여, 결국 핵심 인재들이 에너지를 소진하고 조직을 떠나게 만든다.
손(巽) - 부드럽지만 꾸준한 영향력으로 이끄는 순응

진(震)의 강력함과 대비되는 네 번째 환원은 손(巽, ☴), 즉 바람의 모습이다. 공동체의 환원은 부드럽지만 꾸준한 영향력으로 시스템 전체에 깊이 스며들어 순응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는 손의 환원은,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지만 뿌리 깊은 변화를 추구한다.
손(巽)은 권력이나 폭력이 아닌, 설득과 소통을 통해 구성원의 자발적인 동의를 이끌어내고, 시스템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땅(坤)의 광대한 다양성 위에 바람(巽)이 불어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는 풍지관(風地觀) 괘처럼, 손의 환원은 공동체 문화나 업무 방식에 대한 체계적이고 부드러운 정화 작용을 의미한다.
하지만 손(巽)의 환원은 지나치게 느리거나 모호할 때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명확한 방향 제시 없이 완곡한 태도만 취하며 중요한 결정을 미루고 시간만 보내는 것은, 풍산점(風山漸)과 같이 느리고 지체되어 문제 해결의 동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리(離) - 명확한 문화적 표상이나 이념으로 제시

다섯 번째 환원의 양태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리(離, ☲), 불의 모습이다. 공동체의 환원은 잠재력을 빛으로 드러내 모두가 따를 만한 명확한 문화적 표상이나 이념을 제시하는 데 있다는 것이 리의 핵심이다.
리(離)의 환원은 내부의 뛰어난 능력(乾)이 불처럼 외부에 명확히 드러나 큰 성과와 명예를 얻는 화천대유(火天大有)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가장 긍정적이다. 대한민국의 문화 콘텐츠(K-Pop, K-드라마)가 전 세계 시장에서 강력한 브랜드 가치와 명성을 얻으며 국가 이미지 제고라는 환원을 이룬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하괘의 다양성을 명확한 형태로 가시화하는 힘이다.
그러나 리(離)의 환원이 지나치게 외부에 의존할 경우,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나 내부 역량 강화는 등한시하고 오직 외부에 잘 보이기 위한 전시 행정이나 겉모습(이미지)만 과도하게 추구하는 화택규(火澤睽)의 분열된 상황을 초래한다.
감(坎) - 위험과 난관을 겪으며 얻은 성찰과 문제 해결 능력

여섯 번째 환원은 깊고 험난한 감(坎, ☵), 물의 모습이다. 공동체의 환원은 불가피한 위험과 난관을 겪어내면서 얻은 깊은 성찰과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으로 나타난다. 감은 본래 '위험'을 의미하지만, 위험을 통과함으로써 얻는 지혜와 생존 능력이야말로 공동체에게 가장 귀중한 환원이 된다.
새로운 시작(震)이 험난한 과정(坎)을 통과하며 마침내 난관을 극복하는 수뢰둔(水雷屯) 괘처럼, 감(坎)의 환원은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낸 노하우와 시스템 재정비 능력을 공동체에 제공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 사회가 겪은 고통은 이후 기업 구조조정과 금융 시스템 혁신이라는 깊은 성찰을 남겼으며, 이는 이후 글로벌 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강력한 환원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감(坎)이 거듭될 경우(重水坎), 위험에 대한 과도한 방어와 비관론이 시스템을 지배하게 되며, 결국 모든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여 공동체의 도전 정신과 활력(다양성)을 꺾어버리고 혁신을 중단하는 마비 상태에 빠진다.
간(艮) - 가치를 수호하고 고유한 정체성과 원칙 제시

일곱 번째 환원의 모습은 움직임을 멈추고 제자리에 확고히 머무는 간(艮, ☶), 산의 모습이다. 공동체의 환원은 무분별한 움직임을 멈추고 고유한 정체성과 원칙을 확립하여 흔들리지 않는 가치를 지키는 데 있다.
간(艮)의 환원은 하늘(乾)의 강력한 힘을 막아 세워 에너지를 축적하는 산천대축(山天大畜)의 모습처럼, 외부의 압력과 내부의 무절제한 다양성에 휩쓸리지 않고 공동체가 지켜야 할 변치 않는 윤리와 철학을 명확히 제시하는 힘이다. 이 확고한 정체성은 장기적인 안정성과 신뢰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파타고니아와 같은 기업이 환경 윤리와 지속가능성이라는 확고한 원칙(艮)을 고수하며 외부의 유행에 흔들리지 않을 때, 그 가치 자체가 강력한 환원이 되어 새로운 고객과 인재를 끌어모은다.
그러나 간(艮)의 환원이 부정적으로 흐를 경우, 변화하는 환경(하괘의 坤)을 거부하고 과거의 원칙만을 고집하며 정지해 있어, 결국 아래로부터 기반이 깎여나가 붕괴에 이르는 산지박(山地剝)의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태(兌) - 소통과 교류로 공동체에 불어넣는 긍정적 활력

마지막 여덟 번째 환원의 양태는 기쁨을 나누고 교류하는 태(兌, ☱), 못(연못/습지)의 상징이다. 공동체의 환원은 구성원 간의 활발한 소통과 유쾌한 교류를 통해 공동체 전체에 긍정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데 있다.
태(兌)의 환원은 지식과 자원이 자유롭게 교환되고, 계층이나 부서 간의 장벽이 허물어져 창의적인 아이디어(하괘)가 실현되는 즐거운 환경을 조성한다. 이는 불(離)의 깨달음이 못(兌)을 만나 물갈이하듯 새로운 체제로 변혁하는 택화혁(澤火革)과 같은 긍정적인 변동을 이끌어낸다. 수평적 문화와 자유로운 피드백 구조를 가진 조직은 이 쾌활한 교류를 통해 문제점을 신속히 해결하고 시너지를 창출한다.
하지만 태(兌)의 환원은 그 즐거움이 지나칠 때 본질을 잃는다. 공동체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오직 사소한 이익이나 개인의 감정적 만족만을 추구하는 소모적인 논쟁이나 유희에만 휩쓸려, 실질적인 목표 설정과 실행력이 약화되는 과도한 쾌락(重澤兌)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공동체가 지속가능한 공생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하괘의 '다양성'을 얼마나 잘 확보했느냐의 문제를 넘어, 그 다양성의 잠재력이 상괘의 '환원' 단계에서 여덟 가지 괘상 중 어떤 형태로 발현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진단하는 데 달려 있다. 건(乾)의 압도적인 비전을 필요로 하는 시점에 곤(坤)의 무기력한 포용성만을 고집하거나, 진(震)의 급진적인 충격이 필요한데 손(巽)의 느린 점진성만 추구한다면 시스템은 시의적절성을 잃는다.
주역이 '변화의 철학'이듯, 공생 조직의 리더십은 공동체의 상황에 대하여 상괘의 환원 형태가 하괘의 다양성 유형과 역동적으로 소통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환원이 공동체가 처한 '때(時)'에 맞는 가장 이상적인 대성괘를 만들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이 여덟 가지 환원의 유형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잘 사는 길, 즉 공생의 영원한 숙제를 푸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될 것이다.
#251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