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 시스템의 '다양성' 유형 8가지
모든 지속가능한 공동체, 즉 '공생 시스템(Symbiotic System)'의 흥망성쇠는 그것이 서 있는 토양(다양성)에서부터 결정된다. 아무리 훌륭한 보상(상괘)과 리더십(주효)이 있다 한들,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에너지의 질, 즉 '다양성(Diversity)'이라는 토양이 척박하다면 어떠한 열매도 맺을 수 없다. '공생 시스템 주역 모델(Symbiotic System Iching Model, SSIM)'은 이 근본적인 잠재력이자 시스템의 DNA를 64개의 주역괘 구조에서 하괘(下卦), 즉 내괘(內卦)로 상징한다. 하괘는 그 공동체가 본질적으로 어떤 종류의 공생 에너지를 자양분으로 삼고 있는지, 어떤 잠재력을 품고 있으며, 동시에 어떤 내재적 갈등의 씨앗을 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밑그림이다.
공동체가 어떤 하괘를 근간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조직의 운명은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된다. 이 다양성의 스펙트럼은 팔괘(건乾, 태兌, 리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즉, 여덟 가지의 원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 여덟 가지 얼굴을 통해,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보이지 않는 기반을 진단하고 그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통찰할 수 있다.
건(乾) - '스스로 움직이는 강력한 주도자'들의 다양성

가장 강력하고 순수한 양(陽)의 에너지로 시작해 보자. 만약 한 공동체의 하괘가 '건(乾)'이라면, 우리는 그곳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강력한 주도자들의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은 문자 그대로 'A-Player'들의 집합소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스타트업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가 그러했듯, 공동체의 핵심 구성원들은 누구의 지시도 기다리지 않고 각자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을 이끌어낸다. 초기 애플(Apple)을 이끌었던 스티브 잡스와 핵심 엔지니어들처럼, 강력한 신념과 열정으로 주변 사람들까지 '이건 무조건 된다'고 믿게 만들어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이던 목표도 결국 현실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한 열망은 서로를 끊임없이 자극하며 조직 전체의 상향 평준화를 유도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들이 포진해 있어 비전과 목표는 레이저처럼 명확하게 추진된다.
하지만 하늘에 용이 너무 많으면(群龍) 비를 내리는 대신 서로의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이 강력한 주도성은 필연적으로 극심한 주도권 다툼이라는 그림자를 동반하게 된다. 수많은 공동 창업자들이 초기의 빛나는 비전을 뒤로하고 경영권 분쟁이라는 진흙탕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이 '건(乾)'의 에너지가 부정적으로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뛰어난 역량은 "나만이 옳다"는 독선으로 변질되기 쉬우며,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을 나약함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모두가 리더가 되려 하고 모두가 '빛나는 일'만 하려 하기에, 정작 궂은일을 묵묵히 수행할 '팔로워'가 부재할 수 있다. 결국 화려한 계획은 공중에서 흩어지고, 조직은 단단한 실행력이라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비극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곤(坤) - '수용하고 실행하는 실무자'들의 다양성

이와 정반대의 스펙트럼에 '건(乾)'의 역동성이 아닌, '곤(坤)'의 수용성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다. 하괘가 '곤(坤)'인 공동체는 "모든 것을 수용하고 묵묵히 실행하는 실무자들의 다양성"을 그 근간으로 한다. 하늘이 창의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면, 땅은 그 모든 것을 받아내어 현실에서 구현해낸다. 이곳은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보다는, 오랜 전통을 지키는 장인 기업이나 수백 년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박물관, 도서관처럼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구성원들이 중심이 된다. 이들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강력한 포용력을 지니며, 리더십의 결정이 아무리 거창하더라도 그것을 현실의 디테일로 완성해내는 힘을 가졌다. 이들의 '현실 감각'이야말로 조직이 공중에 뜨지 않게 붙잡아주는 가장 강력한 중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견고한 안정성은 반대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변화에 대한 둔감성이 대표적이다. 땅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기에, 외부 환경이 급격하게 변할 때 적응하지 못하고 혁신의 시기를 놓치기 쉽다. 수많은 전통 제조업체들이 '디지털 전환'이라는 파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것은,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해왔다"는 '곤(坤)'의 에너지가 가진 수동성 때문이었다. 리더의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문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갈등을 회피하는 집단사고의 함정 속에서 비판적인 목소리와 새로운 아이디어는 뿌리내리기도 전에 질식할지도 모른다.
진(震) - '변화를 촉발하고 목소리를 내는 행동가'들의 다양성

'건(乾)'과 '곤(坤)'이 각각 능동과 수동의 극단을 보여준다면, 어떤 공동체는 '움직임' 그 자체를 본질로 삼는다. 그 첫 번째는 땅을 뚫고 나오는 우레, '진(震)'의 에너지이다. 하괘가 '우레(震)'인 공동체는 "변화를 촉발하고 목소리를 내는 행동가들의 다양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들은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강력한 목소리를 내며, 새로운 시작을 촉발하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마치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을 이끈 마르틴 루터처럼, 이들은 문제점을 발견하면 즉각 공론화하고 행동에 옮겨, 사내 비리를 고발하는 내부 고발자 그룹이나 조직의 오랜 병폐를 신속하게 도려내는 개혁가들과 같다. 정체된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고 "일단 해보자"는 그들의 역동성은 신시장 개척을 주도하는 사내 벤처팀이나 미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의 혁신적인 항공기 설계와 극비 연구를 담당하는 '스컹크웍스(Skunkworks)' 팀처럼 변화를 위한 행동이 요구될 때 가장 빛이 난다.
하지만 우레의 움직임은 거칠고 파괴적일 수 있다. 너무 잦은 문제 제기와 급진적인 변화 요구는 조직의 안정성을 해치고 구성원들의 피로도를 극단적으로 높인다. 본질적인 문제 해결보다 '이슈 파이팅' 자체에만 집중하게 될 위험도 크다. 무엇보다 '진(震)'의 가장 큰 함정은 '용두사미(龍頭蛇尾)'의 가능성이다. 시작은 거창했으나, 그 충격 이후의 지난한 수습 과정이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감당하지 못하고, 새로운 '충격'을 찾아 떠난다. 결국 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실속 없는 혼란과, 이들의 에너지를 감당해야 했던 동료들의 냉소만이 남게 된다.
손(巽) - '부드럽게 스며들고 연결하는 소통가'들의 다양성

만약 '진(震)'이 거칠고 폭발적인 변화의 동력이라면, '손(巽)'은 그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변화를 이끄는 유형이다. 하괘가 '손(巽)'인 공동체는 "부드럽게 스며들고 연결하는 소통가들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다. 이들은 바람처럼 유연하고 부드럽다. 조직의 상하좌우를 넘나들며 정보를 전달하고 부서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네트워크의 중심이 된다. 뛰어난 사내 커뮤니케이션팀이나, 적대적인 국가 사이를 오가며 합의를 이끌어내는 유능한 외교관처럼, 이들은 부드럽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을 조율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또한 "공기"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며 외부의 새로운 트렌드나 경쟁사의 동향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조직 내부에 전파하는 '정보 브로커'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람은 그 자체로 방향성이 없다. 너무 많은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방향성 상실'과 '우유부단'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하기도 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이들의 성향은 때로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정보의 흐름을 쥐고 있다는 특권은, 때로 여론을 조작하거나 파벌을 형성하는 '내부 정치(Office Politics)'의 도구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정보를 전략적으로 차단하거나 왜곡하며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또한 겉으로는 모든 사람과 연결된 듯 보이지만, 그 관계가 피상적인 수준에 그쳐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이르지 못하고 표면적인 합의에만 맴돌기도 한다.
감(坎) - '난관에 도전하고 깊이를 추구하는 전문가'들의 다양성

이처럼 외부로 드러나는 움직임(震, 巽)을 넘어, 어떤 공동체는 그 '깊이'와 '밝음'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 먼저, 가장 위험하지만 깊은 '감(坎)'부터 살펴보자면, 하괘가 '감(坎)'인 공동체는 "난관에 도전하고 깊이를 추구하는 전문가들의 다양성"을 핵심 자산으로 삼는다. 이들은 험한 물의 속성처럼 위기와 난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두가 기피하는 어렵고 위험한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혀 해결책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는 치명적인 사이버 공격을 막아내는 보안 전문가팀, 혹은 전염병의 한가운데서 백신을 개발하는 바이오 연구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특정 분야에 대한 집요한 깊이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전문성을 구축하며, 함께 고난을 극복한 경험은 구성원 간의 강한 내적 결속력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물은 깊고 어두우며, 때로는 고립을 자초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전문 영역에 매몰된 나머지,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기 쉽다. 타 부서와 전혀 협력하지 않고 소통이 단절된 '사일로(Silo)' 조직이 그 대표적인 예다. "당신들이 뭘 아느냐"는 식의 엘리트주의로 협업을 가로막기도 하고, 끊임없이 문제와 위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조직 문화 전반에 비관주의와 냉소가 팽배해질 수 있다. 또한 "위험" 자체에 익숙해진 나머지 때로는 불필요하거나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여 조직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리(離) - '비전을 제시하고 명료함을 밝히는 지식인'들의 다양성

이 어둡고 깊은 '감(坎)'의 에너지와 정반대편에, 밝게 타오르는 '리(離)'의 공동체가 있다. 하괘가 '리(離)'인 공동체는 "비전을 제시하고 명료함을 밝히는 지식인들의 다양성"을 토양으로 한다. 불이 어둠을 밝히듯, 이들은 밝은 지성과 통찰력으로 현상을 분석하고 공동체의 나아갈 길을 밝힌다. 강력한 학문적 비전을 가진 대학의 교수진이나,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자들처럼, 뚜렷한 철학을 공유하는 예술가나 지식인 집단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공동체의 철학과 비전을 명료하게 정립하여 구성원들에게 '북극성'을 제시하며, 뛰어난 통찰력으로 지적인 자극을 주어 조직의 역량을 끌어올린다. '밝음'을 추구하는 성향 덕분에 문화적, 윤리적 기준이 높게 형성되는 것 또한 큰 자산이다.
그러나 불은 모든 것을 태우지만, 실체가 없다. "말"과 "비전"은 화려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실행력이 부족하여 '현실과 괴리된 이상주의'에 빠지기 쉽다. 이론에만 치우친 전략기획팀의 완벽한 보고서가 현장의 복잡성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한 각자의 '밝음(신념)'이 너무 강한 나머지, 서로 자신의 옳음만을 주장하며 격렬한 '이념적 갈등'을 빚기도 한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나 명분에 치중하다 내실을 잃어버리는 '외화내빈(外華內貧)'의 함정 또한 '리(離)'의 공동체가 경계해야 할 그림자라고 볼 수 있다.
간(艮) - '원칙을 지키고 안정감을 부여하는 중재자'들의 다양성

마지막으로, 공동체의 다양성은 그 구조적 안정성과 사회적 유연성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간(艮)'과 '태(兌)'의 에너지가 그것이다. 하괘가 '간(艮)'인 공동체는 "원칙을 지키고 안정감을 부여하는 중재자들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다. 산은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며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들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멈출 때(止)'를 알고 원칙을 고수한다. 법과 원칙을 수호하는 법무팀이나, 단 하나의 오류도 용납하지 않는 품질관리(QC)팀, 혹은 조직의 윤리 강령을 관리하는 감사팀이 이들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급격한 외풍에 조직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며, "저곳은 원칙을 어기지 않는다"는 높은 신뢰를 구축한다. 과도한 확장을 멈추고 내실을 다지게 하는 '브레이크' 역할이야말로 이들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멈춰있는 산은, 때로 완고한 저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지나쳐, 시대의 흐름에 맞는 유연한 변화까지도 거부하는 '수구 세력'이 될 수 있다. 모든 신기술 도입을 "절차에 맞지 않는다",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보수적인 임원진의 모습에서 우리는 '간(艮)'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원래 하던 대로"만 하려는 관료주의에 빠져 조직은 성장을 멈추고 정체되며, 자신의 영역(산) 안에만 머무르며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는 '문지기(Gatekeeper)'가 되어 혁신을 가로막는 경우도 있다.
태(兌) - '기쁨을 나누고 교류를 촉진하는 사교가들의 다양성

'간(艮)'의 묵직한 멈춤과 정반대되는 에너지가 바로 '태(兌)'의 가볍고 즐거운 교류라고 할 수 있다. 하괘가 '태(兌)'인 공동체는 "기쁨을 나누고 교류를 촉진하는 사교가들의 다양성"을 그 자양분으로 삼는다. 연못(못)에 물이 모여 생명을 키우듯, 이곳은 즐거움과 기쁨을 나누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사내 동호회나 조직 문화 담당팀처럼,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받으며 활기찬 문화를 형성하기도 한다. 구글의 '20% 타임' 문화처럼, 격식 없는 자유로운 대화(기쁨) 속에서 예상치 못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협력이 촉발된다. 이들은 '심리적 안정감'을 조직에 불어넣어 구성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게 만든다. 또한 이들의 사교적인 성향은 유능한 세일즈팀이나 대외협력 부서의 모습으로 나타나, 외부 고객 및 파트너와 강력한 긍정적 관계를 구축한다.
그러나 이 즐거움이 지나치면 본질을 잃은 가벼움이 될 수 있다. 즐거움과 재미만을 추구하다가 조직의 본질적인 목표나 성과를 등한시할하게 되는 것이다. 일은 하지 않고 '재미있는' 활동에만 몰두하는 팀은 '태(兌)'의 에너지가 과잉된 상태이다. 자유로운 소통은 생산적인 토론이 아닌 '뒷담화'나 '가십'으로 변질되어 파벌을 형성하고, 기쁨이라는 감정에 기반하다 보니 체계적인 계획보다는 즉흥적인 결정에 의존하여 조직의 중심을 흔들 수 있다. "친소 관계"가 성과보다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는 위험 또한 존재한다.
이처럼 우리 공동체의 기반을 이루는 '다양성'의 여덟 가지 얼굴은 각각 눈부신 잠재력과 치명적인 함정을 동시에 품고 있다. '건(乾)'의 주도성, '곤(坤)'의 실천력, '진(震)'의 행동력, '손(巽)'의 소통성, '감(坎)'의 깊이, '리(離)'의 통찰력, '간(艮)'의 안정성, '태(兌)'의 긍정성 중 어느 하나도 그 자체로 완벽하거나 열등하다고 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하괘(下卦)의 토양 위에서, 우리가 어떤 상괘(上卦), 즉 '환원'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어떤 '주효(主爻)'의 리더십으로 이 잠재력의 빛을 극대화하고 그림자를 다스릴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다. 지금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하괘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 토양의 진정한 잠재력을 과연 꽃피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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