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의 가면을 쓴 강자의 논리, '택풍대과'의 지혜가 필요한 순간 (대과大過)

국제 관계의 무대는 거대한 역학적 흐름 속에서 움직인다. 힘과 힘이 충돌하고, 명분과 실리가 교차하는 복잡한 양상 속에서 우리는 지금, 주역(周易)의 한 괘(卦)가 경고하는 위태로운 균형 앞에 서 있다. 자유진영이라는 이름 아래 공생을 외치는 동맹의 한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맹주인 미국은 공생의 가면을 벗고 강자의 논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이는 마치 주역 괘의 '택풍대과(澤風大過)'가 보여주는 형상과 같다. 연못(兌, 태)의 물이 아래의 바람(巽, 손)을 과도하게 짓눌러 바람이 꺾일 위기에 처한 형상인 것이다. 바로 지금은 동맹이라는 연못 아래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바람이 버텨야 하는 위태로운 순간이다.

대과(大過)의 시대, 동맹의 변질
'대과'는 '크게 지나치다'는 의미이다. 모든 것이 정상적인 범위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현재 한미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막대한 현금 투자금은 바로 이 '대과'의 가장 극명한 사례이다. 우리 외환보유고의 80%에 달하는 현금을 요구하는 것은 경제적 부담을 넘어 국가의 안정을 위협하는 수준임에 틀림없다. 전문가들조차 차라리 관세를 부담하는 것이 낫다고 말할 정도로, 이 요구는 상식과 상호주의의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다.
과거 냉전 시대의 동맹은 '적'이라는 공동의 위협에 맞서 상호방위를 약속하는 상호 신뢰의 관계였다. 그러나 지금의 동맹은 '공생'이라는 아름다운 포장을 하고 있지만, 그 내부는 이미 변질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자국의 경제적,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맹국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막대한 관세를 무기로 일본과 유럽에도 똑같은 압력을 행사하고 결국 일방적인 투자를 합의했거나, 강요하고 있다. 이는 동맹을 힘의 우위를 이용한 '거래 관계'로 전락시킨 것에 불과하다.
어떤 국가이든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강대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국제사회의 냉정한 현실이다. 그러나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상호 신뢰를 쌓아온 관계에서 이러한 일방적인 요구는 단순히 '강자의 논리'를 넘어선 배신 행위로 인식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동맹의 근간을 허물고, 서로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켜 결국 공동체 전체의 힘을 약화시킬 것이다. '택풍대과'의 괘는 바로 이 지점을 경고하고 있다. 연못이 바람을 짓누르다 결국 바람이 꺾이면, 연못 역시 지지대를 잃고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의 효(爻): 위태로운 관계의 표상
'택풍대과' 괘에서 대한민국과 미국을 각각 상징하는 효를 살펴보면, 현재 관계의 위태로움이 더욱 명확해진다.

미국은 괘의 가장 아래에 있는 '초육(初六)'에 해당한다. 초육은 '기둥에 짚을 깐다(藉用白茅)'는 의미로, 불안정한 기초를 상징한다. 겉으로는 강력한 힘을 과시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자국의 경제적 불안정성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동맹국들의 자원을 끌어다 쓰는 모습과 다름없다. 과거의 굳건한 기둥(동맹의 신뢰)이 약해지자, 동맹국들의 희생이라는 '짚'을 가져와 일시적으로 버티려는 형국인 것이다. 남의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소박한 차림과 짚으로 차리는 검소한 자리를 준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미국은 어떠한가. 투자를 받는 입장에서, 투자금을 강탈하다시피 합의를 강요하고, 급기야 불법체류자라는 혐의로 투자국의 노동자들까지 불법 구금하여 내쫓고 있다. 이와 같은 사리의 어긋난 미국의 처사는 결국 '대과'의 상황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대한민국은 '구삼(九三)' 효에 해당한다. 구삼은 '기둥이 흔들린다(棟撓)'는 의미로, 기둥이 흔들리고 기울어져 위태로운 상황을 뜻한다. 대한민국은 '택풍대과' 괘의 위태로운 상황에서 미국이라는 강력한 압박에 의해 경제적 근간이 흔들리는 위치에 놓여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현금 투자는 외환보유고의 80%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으로, 이는 한국 경제의 '기둥이 흔들리는' 상황으로 직결된다. 전문가들이 차라리 관세를 부담하는 것이 낫다고 말할 정도로, 이 요구는 정상적인 경제적 부담을 훨씬 초과하는 수준이다. 구삼이 변하면 지괘(之卦)가 택수곤(澤水困)괘로 되니, 매우 곤궁한 상황으로 변한다. 흉하게 되지 않으려면 굳게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기업의 부담을 넘어 국가 경제의 시스템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위기로, '구삼' 효의 위험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택풍대과'의 지혜, 위기를 극복하는 길
'대과'의 상황은 단순히 위험만을 의미하지는 않다. 위기는 곧 변화의 기회이며, 무너질 것 같은 위기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택풍대과' 괘는 위기를 극복할 다음과 같은 지혜를 동시에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무모한 행동을 경계해야 한다.
괘의 여섯 번째 효인 '상육(上六)'은 '지나치게 건너다 이마를 멸한다(過渉滅頂)'는 뜻으로 지나쳐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흥분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현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무리한 행동을 삼가야 함을 조언한다. 외교 협상에서 감정적인 대응은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법이다. 국민적 분노를 이해하되, 협상 테이블에서는 원칙과 실리에 기반한 냉정한 논리를 펼쳐야 한다.
둘째, 내부의 힘을 다지고 자립을 모색해야한다.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는 우리가 특정 국가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적인 기술력과 시장을 확보해야 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특정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언제든 '택풍대과'와 같은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 자립형 경제 구조를 구축하고,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튼튼한 기둥'을 세우는 길이다.
셋째, 동맹의 '공생'을 재정립해야 한다.
겉만 번지르르한 '공생'의 가면을 벗고, 진정으로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동맹의 모습을 재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 같은 요구를 받고 있는 동맹국들과 연대하여 공동의 목소리를 내고,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키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함께' 위기에 대처함으로써 개별 국가가 겪는 부담을 줄이고,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택풍대과'의 상황은 한 국가의 위기를 넘어, 자유진영 동맹 전체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이대로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관계가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상호 존중과 신뢰의 관계를 회복할 것인가? 대한민국은 이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우리는 '택풍대과'의 위기를 인정하고, 무모함을 경계하며, 지혜롭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무너질 것 같은 기둥'을 다시 세우고, 진정한 의미의 공생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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