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이 들려주는 12.3 계엄(2)] 파국으로 치닫는 밤: '택화혁(澤火革)'

앞 글에서 우리는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 초기에 보였던 교만이 '천산둔' 괘의 경고를 외면했음을 이제 안다. 그 교만은 단순한 개인적 문제를 넘어, 점차 권력의 오만함으로 발전하며 급기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적인 시도를 낳고 말았다. 2024년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은 단순한 정치적 해프닝을 넘어,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변화이자 사건'이다. 그러나 이 변화는 정당성을 결여하고 공생의 가치를 전면 부정함으로써 결국 실패로 귀결되었다. 주역의 '택화혁(澤火革)' 괘는 이러한 무모한 시도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는지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제공한다.

혁명의 여건은 충분히 성숙되었는가

택화혁 괘

'택화혁(澤火革)' 괘는 위에는 연못(澤)이 있고 아래에는 불(火)이 있는 형상이다. 연못의 물이 불에 의해 마르고 증발하는 것처럼, 오래된 것을 개혁하고 새로운 것을 세우는 '혁명'의 시기를 의미한다. 괘사는 "혁은 이일(已日)이라야 내부(乃孚)하니, 원형이정하며 회망하느니라." (革 已日乃孚 元亨利貞 悔亡) 즉, '혁은 이미 날이어야(바꾸어야 하는 공감대가 충분히 무르익어야) 이에 믿을 것이니,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하면 이로워서 후회가 없어진다'고 말한다. 이는 혁명이 성급하게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오랜 준비와 신중함, 그리고 백성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12.3 계엄은 어떠한가. 그 정당성과 필요성을 공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혁'괘의 정신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혁괘의 효사에는 12.3계엄의 그릇된 혁명의 면모가 특히 잘 드러난다.

효사는 하괘에 해당하는 초구와 이효, 삼효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택화혁 초구

초구, 누런 소의 가죽을 굳게 쓴다.
初九, 鞏用黃牛之革

소가죽은 질기다. 질긴 가죽으로 단단하게 묶어두는 것처럼 혁명을 함에 있어서는 쉽게 움직여서는 안된다. 충분한 명분과 성공시킬 수 있는 상황이 무르익어야만 한다. 윤석열 정부의 계엄 시도는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국회의 발목 잡기와 같은 낡은 시스템을 혁파하려는 시도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어떠한 명분도 찾아볼 수 없는 12. 3. 계엄은 매우 경솔하고 독단적이었다. 이는 진정한 혁명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강압적 행위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택화혁 육이

육이, 이미 날이어야 혁명하니, 가면 길하다. 허물이 없다.
六二, 已日乃革之 征吉 无咎

육이는 하괘의 중심이 되는 자리다. 초효처럼 준비가 부족하지도, 삼효처럼 과하지도 않다. 딱 적당하다. 특히 육이는 상괘의 구오와 응하여 혁명할 수 있는 적절한 때이다. 하지만 이 역시 육이에서도 혁명의 시기가 충분히 무르익었어야 한다.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밤 10시에 뉴스 속보로 전달되는 비상 계엄 소식은 황당 그 자체였다. 누가 과연 상상이라도 했을까. 이런 어처구니 없는 혁명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절실히 혁명이 필요하다고 느낀 건 국민들이 아니라, 윤석열을 포함한 용산의 소수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

택화혁 구삼

구삼, 가면 흉하니, 바르게 하고 위태롭게 여겨라. 혁명하자는 말이 세 번 나아가면 미더움이 있다.
九三, 征凶 貞厲 革言 三就 有孚

삼효는 하괘에서 중을 지나쳤다. 스스로 바르게 하고 항상 위태로운 마음으로 조심하여야 한다. 혁명하자는 말이 세 번 나아간다는 것도 상황과 명분의 충분한 무르익음을 의미한다. 12.3 계엄이 처음부터 명분없는 예정된 실패였음은 앞에서도 여러번 얘기했다. 주역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이었고, 흉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12.3 계엄은 공생적인가

이제 공생의 관점에서 택화혁의 괘상을 풀어본다.

아래의 있는 불(하괘)로 위에 있는 그릇의 물(상괘)을 끓여서 넘치게 하는 형상이다. 물은 언제 끓어 넘치는가. 불이 충분히 달구어져 뜨거워야 물이 끓는다. 물이 팔팔 끓어야만 뚜껑을 열고 사방 팔방으로 튀어 넘칠 것이다. 하지만 불이 약하면 물만 조금 데우다가 꺼져버릴 것이다. 하괘에서 충분히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야 우습게 되지 않는 것이다.

택화혁의 상황은 공생 시스템의 3대 요소인 다양성, 환원, 리더십 중 특히 다양성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되는 경우다. 다양성은 구성원(구성요소) 각자의 강점과 역할이 충분히 발현되어야 함을 말한다. 물이 끓어 넘치는 상황을 만들려면 상괘의 구성요소는 물이 가득찬 그릇이어야 하고, 하괘의 구성요소는 충분한 화력을 가진 불이어야 한다. 이처럼 혁명이라는 이벤트가 성공하려면, 혁명에 동원되는 구성요소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충분히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12.3 계엄은 가장 중요한 재료인 명분부터 전혀 갖춰지지 못했다. 혁명을 도모하는 윤석열 정부 측면에서 볼 때, 혁명이 가능한 공생 상황이 애초부터 될 수 없었으니 실패는 피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 측면에서 보더라도, 12.3 계엄은 가장 반(反)공생적인 행위였다. 한 사회가 평화롭고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의 상호 존중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윤석열과 김건희의 행보는 오직 자신들의 권력 강화만을 목표로 삼았고, 이를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정치적 반대 세력을 '수거 대상'으로 삼는 등 극단적인 배제와 폭력을 기획하였다. 이는 나무가 숲을 이루는 것처럼 각 개인의 발전이 전체 사회의 발전을 가져온다는 공생의 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무모한 '혁명' 시도는 결국 공생을 파괴하고 사회 전체를 혼란과 파국으로 몰아넣었으며, 스스로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택화혁' 괘는 진정한 변화는 여건의 충분한 조성을 전제로 상호간의 신뢰와 합의에서 비롯되며,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는 강압적이고 독단적인 혁명은 결국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파멸로 이끌 뿐임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파국적인 시도는 다음 챕터에서 다룰, 혼란스러운 '수뢰둔' 괘의 상황으로 연결되는 길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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