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골신부입니다'> 외롭지 않고 고독하겠다

<'나는 산골신부입니다'> 외롭지 않고 고독하겠다

지리산 청학동.

높디 높은 어느 골짜기에 은퇴한 성직자 한 분이 살고 있다.

강영구 루치오 신부님.

1975년 사제서품을 받은 후 마산교구 소속으로 40여년간 사목활동을 하시고 이제는 자연으로 돌아오신 분. 변화무쌍하고 모든 생명을 품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 자리에 묵묵하게 서있는 산을 닮고 싶어서 산으로 들어오셨다는 올해 76세의 신부님.

신부님은 이미 은퇴하셨지만 지리산 이웃들을 위해 미사를 집전하고, 매일 새벽 기도를 잊지 않는다. 기도를 놓치는 순간부터 사제는 위험해진다는 말씀은 사제는 언제나 하느님과 기도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신다. 

바로 그게 외롭지 않고 고독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매주 미사를 열어 이웃들을 맞이하고, 이웃들이 필요로할 때는 기꺼이 달려가서 나무를 대신 심어주고, 가지치기를 해준다. 겨울에 눈이 쌓이면 나이드신 어른들을 위해 마을 어귀까지 눈을 치우고, 가끔은 음식을 준비해서 이웃들과 함께 나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를 통해 언제 어디에서나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으니 외로울 리 없을 것이다.

나는 그 분의 소박하지만 웅장하고, 고독하지만 시끌벅적한 삶에서 내가 살아서 너를 살리고, 전체를 살리는 공생의 삶을 본다.

그 분이 심은 붉은 꽃무릇과 하얀 목련이 바로 그 상징이다.

고귀한 붉은 빛은 결코 가진 것을 내려놓음을 의미하는 희생만이 아니었다. 신부님은 현재 자신이 가졌고, 할 수 있는 것을 내어놓음으로써 오히려 세상 모든 것을 가졌다.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산에서 살면서, 좋아하는 꽃을 심고, 좋아하는 목수 일을 할 뿐이다. 별다른 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한 것으로 이미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지리산 청학동은 어떠한가. 겨울철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오지가 사람사는 향기로 가득찬 따뜻한 곳이 되었다. 신부님이 여기가 바로 천국이라고 말씀하신다.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망인가.

그저 묵묵하게 서 있는 하얀 목련처럼. 나무처럼.

나무는 그저 때에 맞게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울 뿐이지만, 그로 인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달래고, 이따금 찾아오는 새들의 쉼터가 된다. 

나도 외롭지 않고, 고독한 삶을 살고 싶다.

#250545


Read more

[주역이 들려주는 12.3 계엄(4)] 탄핵과 구속의 끝은: '화수미제(火水未濟)'

첫번째 글에서 ‘천산둔’ 괘가 경고한 교만함, 두번째 글에서 ‘택화혁’ 괘가 보여준 무모한 혁명적 시도, 그리고 세번째 글에서 ‘수뢰둔’ 괘가 상징한 혼란과 난관. 이 모든 여정의 끝은 결국 주역의 마지막 괘, ‘화수미제(火水未濟)’로 귀결되었다. ‘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떤 것도 온전히 마무리 짓지 못하고, 모든 것이 불완전한

[주역이 들려주는 12.3 계엄(3)] 민주주의에 막히다: '수뢰둔(水雷屯)'

앞에서 우리는 윤석열 정부가 무모한 '혁명'을 꾀하며 '택화혁' 괘의 지혜를 외면했음을 살펴보았다. 성급하고 준비되지 않은 반민주적 혁명적 시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그 파국이 남긴 것은 극심한 혼란과 정체, 곧 주역의 '수뢰둔(水雷屯)' 괘가 상징하는 난관과 혼돈의 상황이었다. '둔(屯)'은

[주역이 들려주는 12.3 계엄(2)] 파국으로 치닫는 밤: '택화혁(澤火革)'

앞 글에서 우리는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 초기에 보였던 교만이 '천산둔' 괘의 경고를 외면했음을 이제 안다. 그 교만은 단순한 개인적 문제를 넘어, 점차 권력의 오만함으로 발전하며 급기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적인 시도를 낳고 말았다. 2024년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은 단순한 정치적 해프닝을 넘어,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변화이자 사건&

[주역이 들려주는 12.3 계엄(1)]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과 교만: 천산둔(天山遯)

2024년 12월 3일 22:00 대한민국에서는 5. 18. 이후 40여년만에 비상계엄이 발령되었다. 개인의 정치 이념을 떠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는 우리에게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 제2, 제3의 12.3 계엄을 막아야하는 민주시민의 책무가 있다. 이제 곧 시작될 개헌 과정에서 다행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