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은 5차원의 논리를 다룬다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을 차원으로 표현한다면, 0차원은 점, 1차원은 선, 2차원은 면, 3차원은 입체가 된다. 아인슈타인은 3차원의 입체에 직선으로 흐르는 1차원인 시간을 더하여, 4차원을 시간이 흐르는 공간이라고 하였다.

하위 차원은 상위 차원의 단면이 되므로, 상위 차원을 무한하게 자르면 하위 차원이 된다. 1차원인 선은 0차원의 점이 무한히 일렬로 늘어선 형태이다. 2차원의 면은 무한한 개수의 1차원 선으로 개념상 자를 수 있다. 3차원도 무한하게 자르면 2차원 면이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는 4차원의 어느 한 단면은 3차원의 형태를 지닌다.

단면이 된다는 것은 하위 차원으로 상위 차원의 세계를 정확히 양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양분된 상위 차원의 양쪽에서 하위 차원의 전체를 동시에 볼 수 있음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점을 기준으로 선은 둘로 나뉜다. 선을 기준으로 면이, 면을 기준으로 입체가, 시간을 기준으로 입체는 둘로 나뉠 수 있다. 나뉘는 단면을 기준으로 선에서는 점의 전체를, 면에서는 선을, 입체에서는 면을, 시간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양쪽에서 볼 수 있게 된다. 만약 우리가 특정 세계, 특정 사건의 전체를 동시에 볼 수 있다면 적어도 우리는 대상의 차원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관찰하고 있는 셈이다.

주역괘는 음과 양으로 되어 있는 6개의 효로 구성되어 있다. 6개의 효는 초효, 2효, 3효, 4효, 5효, 상효라고 불리며,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를 따로 또는 동시에 상징한다. 즉, 초효부터 상효까지 이르는 과정이 시간의 순서대로 해석될 수도 있고, 공간측면에서 위/아래, 겉/속, 밖/안 등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시공간의 흐름과 배열이 그대로 모사된 세계를 우리는 앞뒤전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괘와 상괘가 동시에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일 뿐, 인간의 시선으로는 아래 3개 효인 하괘와 위 3개 효인 상괘를 물리적으로 동시에 볼 수는 없다) 아인슈타인의 설명에 따르면 시공간의 세계는 4차원이다. 따라서 주역괘를 관찰하는 입장은 적어도 5차원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하나가 더 남았다.

주역괘에는 동효가 있다. 각 효는 음과 양 중 하나이지만, 자세하게 따져보면 아직 기운이 약한 소음, 소양 그리고 기운이 극에 달한 노음, 노양 중 하나로 다시 나뉠 수 있다. 물극필반의 원리에 따라 노음과 노양은 각각 소양과 소음으로 변한다. 이렇게 변하는 효가 동효다. 그런데 만약 반드시 바뀌어야만 하는 것이라면 직선으로 흐르는 시간의 변화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초효에서 상효로 흐르는 시간 개념과 달리, 동효의 변화는 인간의 선택이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변화가 흘러가는 방향에 있어서 인간의 선택이 개입할 수 없다면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 인생은 이미 정해진 프로세스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놀음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는 오지 않았고,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은 여전히 유효하다. 멈출 것인가 아니면 진행할 것인가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질 결과표는 달라진다. 선택에 따라 좌우되는 다양한 결과는 4차원의 한 축을 담당하는 시간의 흐름과는 또다른 차원이 된다.

따라서 주역괘의 동효로 인해 발생하는 본괘와 지괘의 관계는 보통의 시간의 흐름과는 다르다. 주역괘에 존재하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동효가 작동하여 해당하는 효의 음양이 바뀐다는 것은 6개의 효로 이루어진 괘 전체가 64괘 중 전혀 다른 괘로 퀀텀점프를 하게 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지수사괘의 육사(4번째 효로서 음효)가 구사(4번째 효로서 양효)로 바뀌면 더 이상 지수사괘가 아닌 뇌수해괘가 된다. 즉, 은밀히 힘을 비축하고 있는 모습에서 어려움을 뚫고 역동하는 에너지가 솟아나는 모습으로 바뀌어버린다. 이 변화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과는 본질적으로 같지 않다. 지수사괘에서의 하괘인 감괘는 은밀히 감춘 막강함의 상징이지만, 뇌수해괘의 하괘인 감괘는 지금까지 나를 붙잡고 있던 어려움과 곤란함의 상징이다. 주체를 둘러싼 환경과 그 요소별 의미 전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하괘는 시간적으로 사건의 초반에 해당하므로 동효의 작동은 과거까지 바꾸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마치 나를 둘러싼 시공간이 뒤틀리는 것과 같다. 이것은 꿈을 다룬 영화 <인셉션(Inception, 2010)>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주역에서 동효의 움직임에 따라 본괘와 지괘 전체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은 관찰자의 차원을 한 단계 상향시킨다. 앞에서 주역괘가 시공간을 모사한 4차원이고 이를 해석하는 관찰자는 그보다 1차원 높은 5차원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동효로 인해 본괘와 지괘 전체를 동시에 관찰할 수 있으므로, 차원이 상향되어 주역괘는 5차원 그리고 관찰자는 6차원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양명에 따르면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는 마음속 양지가 반응한 결과이므로 특정 상황이나 사건에 대한 인식은 결국 그에 대한 마음의 형태, 그림, 무늬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주역괘로써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추상적으로 그려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 마음은 괘를 품기에 충분히 넉넉하고 지혜롭다. 마음을 괘로 표현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은 5차원이 되고, 그것을 음미하는 우리 자신은 6차원의 관찰자가 된다. 이처럼 주역은 우리 주변의 세계를 심도있게 이해하고, 각자의 마음 속 양지를 드러낼 수 있게 하는 훌륭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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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 10. 까지 총 0회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