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사람은 적이 없다



오늘은 맹자 양혜왕(상) 5장 1절이다.

 

梁惠王曰:「晉國,天下莫強焉,叟之所知也。及寡人之身,東敗於齊,長子死焉;西喪地於秦七百里;南辱於楚。寡人恥之,願比死者一洒之,如之何則可?」
(양혜왕왈 : "진국, 천하막강언, 수지소지야. 급과인지신, 동패어제, 장자사언. 서상지어진칠백리. 남욕어초. 과인치지, 원비사자일세지, 여지하즉가?")

양혜왕이 말하길, "우리 진(晉)나라는 천하에 막강한 나라라는 것은 어른께서도 알고 계시는 바입니다. 그런데 과인의 세대에 이르러, 동쪽으로는 제나라에 패해 장자가 죽었고, 서쪽으로는 진(秦)나라에게 칠백리의 땅을 잃었으며, 남쪽으로는 초나라에 모욕을 당했습니다. 과인이 이를 부끄럽게 여겨, 죽은 자들을 위해 한번 설욕하고자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겠습니까?"

比(비 : 위하여), 洒(세 : 설욕하다)
如[A]何則[B](A를 어떻게 하면 B할 수 있는가)

 

양혜왕은 위나라의 군주이다. 그런데 스스로 진(晉)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진(晉)이 위, 조, 한으로 분리되었지만 그 중에서 위나라가 진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의미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가 구분되는 계기가 바로 진의 분리이다)

이번 질문은 당시 왕이라면 당연히 궁금해했을 현실적인 내용이다. 의미는 크게 어렵지 않으니, 해석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한문에서는 글자 하나로 명사가 되기도 하고, 동사가 되기도 하며, 형용사, 부사로 쓸 때가 있어서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래서 빠르게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가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어처럼 숙어를 많이 알고 있을수록 문장의 구조가 눈에 잘 보인다.

마지막 부분을 보겠다.

대략 아래와 같이 나누어서 보면 될 것이다.

願/比死者/一洒之/,如之何則可?

즉,

願(원하다)比死者(죽은 자를 위하여)一洒之(한번의 설욕을 하다),如之何則可(그것은 어떻게 해야 가능한가)?

여기에서 마지막 부분인 如之何則可은 숙어처럼 알고 있지 않으면, 해석이 까다롭다. 따라서 이해와 최소한의 암기가 수반되어야 한문 읽기가 점점 더 편해진다.

고전 중에서는 좋은 글들이 정말 많다.

일반적으로 동양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사서(四書)의 고전을 읽을 때는 대학으로 시작해서, 흔히 아는 논어, 맹자 그리고 중용의 순으로 진행한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이유와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먼저 알고, 공자와 맹자를 공부한 후, 다소 형이상학적인 중용의 순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맹자를 먼저 강독하는 이유는 (맹자가 한문의 문리文理를 터득하기에 좋다라는 잇점 말고도) 리더십 때문이다. 맹자는 왕도정치를 강조한 인물로, 그 책 맹자에는 어떻게 하면 군왕의 리더십을 크게 확충할 수 있는가, 그 리더십을 발휘하여 제대로 된 정치를 펼칠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하다. 혹자는 서양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있다면 동양에는 한비의 '한비자'가 있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 '한비자' 대신 '맹자'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럼 오늘은 어제에 이어, 맹자 양혜왕(상) 5장을 계속 진행하도록 하겠다.

 

맹자대왈 : 지방백리이가이왕.
孟子對曰:「地方百里而可以王。

맹자가 답하길, "땅이 사방 백리만 되어도 왕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백리가 40km 쯤 되므로, 가로 세로 80km 정도의 땅을 말한다. 우리나라로 보면 서울, 경기, 인천을 포함하는 수도권 면적쯤 되겠다. 그런데 물론 고대에는 우리나라 수도권처럼 인구 2,000만이 넘는 인구밀도는 아니었을테니, 그보다 인구수는 훨씬 적을 것이다.

맹자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왕이 되기 위한 최저 요건이 이처럼 낮다는 것이다. PC게임으로 치면 10년전 구닥다리 PC로도 플레이할 수 있는 그런 최저 사양이라고 할까. 맹자는 천하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넓은 국토, 많은 인구가 초기 필수요건이 아니라고 양혜왕을 안심시킨다.

그렇다면 부강한 나라가 되기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왕여시인정어민, 생형벌, 박세렴, 심경이누.
王如施仁政於民,省刑罰,薄稅斂,深耕易耨。

왕께서 만약 백성들에게 어진 정치를 베푸시고, 형벌을 줄여주시고, 세금을 적게 거두신다면, (백성들은) 밭을 깊게 갈고, 김을 잘 맬 것입니다.

 

당시 국가에서 세금을 거두는 이유는 전쟁, 공사, 사치를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양혜왕은 전쟁을 좋아하는 왕이었다. 또 이전 포스팅에서 다룬 것처럼 제나라, 진나라, 초나라에서 당한 치욕을 갚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백성들을 동원하여 전쟁터로 보내고, 세금을 징수하여 전쟁 물자를 비축한다면 당연히 사회 분위기는 흉흉해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을 다스리기 위해 다시 형벌을 강화하면 도저히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된다. 백성들이 군역과 부역에 다니느라 집을 자주 비우게 되면, 제 때 밭을 갈 수 없고, 김을 맬 수 없다. 그 결과 생산량은 줄고 세금이 더 가혹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맹자는 백성들의 생활을 먼저 챙기라는 것이다. 국가의 힘은 바로 국민에게서 나온다. 국민이 건강하고 부유해져야 국가도 부강해진다.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하는 것은 국민의 삶을 챙기는 것이다. 국민들이 걱정없이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단한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제 때 해야할 일을 때에 맞춰 챙기게끔 해주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 회사의 리더십으로 바꿔서 얘기해보자.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 이런 용어들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집에서는 쉬는 것을 말한다. 퇴근 후에 수시로 업무연락을 받고, 휴일에도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사기는 떨어지고, 생산성은 오히려 낮아진다.

리더는 팔로어가 최대한 제 때 일하고, 제 때 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혹시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때도 불필요한 갑질은 해선 안된다. 물론 일할 때도 때를 놓치지 않도록 항상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태도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깔려 있어야 한다.

누구나 스스로 성장하고 싶어한다. 문제는 성장이라는 것이 스위치만 켜면 알아서 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정한 때가 있고, 그 때에 맞춰 뒷받침되어야 하는 액션이 있다. 리더는 때를 놓쳐서는 안된다. 필요하면 자극을 하고, 때로는 보듬어주면서 팔로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고전은 단순한 옛글이 아니다. 수천년간 검증된 글이다.

여기에서 다루는 맹자 역시 계속 읽히고, 해석되며,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인간이 만든 엄청난 텍스트 중에서 살아남아 전수되었다는 것은 쉽게 읽히고 소비되는 글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는 통찰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맹자는 수많은 고전 중에서 조직 관리와 리더십에 관한 지혜가 특히 풍부하다. 관련되는 글의 배경과 연원까지 따져들어가면 실제 역사적 사건들과 연관되는 부분도 많아 재미있기도 하다. 양이 많은 글은 아니나, 이런 속도로 진행하면 아마도 강독을 완료하기 까지 시간은 꽤 걸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속도에 욕심낼 생각은 없다. 시간 나는대로 조금씩 풀어갈 생각이다.

오늘은 지난 주에 진행했던 양혜왕편 5장 3절을 계속 하기로 한다.

 

壯者以暇日修其孝悌忠信,入以事其父兄,出以事其長上,
장자이가일수기효제충신, 입이사기부형, 출이사기장상,

장성한 자들이 쉴 때 매일 효제충신을 닦아서, 집에서는 부친과 형제를 모시고, 밖에서는 어른을 모시니

 

장자는 장성한 자로, 아직 노인이 아닌 자를 의미한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국가의 중추가 되는 사람들이다. 暇日은 '한가한 날'이나 '휴일'로 해석할 수도 있고, 暇와 日을 나누어 '한가할 때, 매일'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후자의 해석이 마음에 든다.

孝悌忠信은 효도와 공경, 충성과 믿음이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왜 유학에서는 충효를 그렇게 강조할까. 부모님께는 효도를, 나라에는 충성을.. 유학을 고리타분하게 느끼는 중요한 원인이 바로 충효의 강조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당연히 충효가 충효로만 그치면 듣기싫은 잔소리가 될 수 있다. 유학이 충효를 강조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생존과 관련이 되어 있다.

공자와 맹자의 춘추전국시대는 천하를 재패하기 위한 국가들의 국력 경쟁이 극심할 때였다. 전쟁이 잦았고, 군대에 동원되느라 농사지을 때를 놓치니 백성들의 삶은 언제나 곤궁했다. 하지만 국방을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언제 더 강한 나라가 쳐들어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루하루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국가가 책임져주지 못한다면 개인은 각자 도생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흩어지면 약해지고, 약해지면 더 강한 놈한테 잡아 먹히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뭉쳐야만 모두가 산다. 뭉치려면 서로가 서로를 붙잡아주는 강한 논리와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때 강조되는 논리가 충이다. 알고보면 왕을 향한 충성의 강조도 왕을 중심으로 모두가 살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왜 왕인가. 왜 왕을 중심으로 왕에게 충성해야 하는가. 누구나 왕이 되고 싶지, 병사가 되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유학에서는 왕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 즉 하늘을 대신하는 대리인으로서의 자격, 우리가 천자라고 부르는 그 자격이다. 그래서 아무나 왕이 되진 못한다. 왕은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만이 될 수 있었다.

하늘은 인간을 내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하늘은 부모다. 그 하늘의 명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자이니, 백성의 부모나 다름없다. 여기에서 충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추가로 필요하다. 나를 낳아준 존재, 나를 태어나게 한 존재에 대한 공경, 즉 효의 논리가 자연스럽게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낳아주었기 때문에 효를 다해야한다는 논리는 뭔가 궁색한 면이 있다. 하늘이 낳은 자연이 하늘에게 효도하는 모습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단순히 '해야 하니까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 효도를 해야한다가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 명령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경제적인 측면에 있다.

누구나 늙는다. 예외가 없다. 늙으면 생산력이 떨어진다. 사냥하고 농사짓는 고대사회에서 생산력의 저하는 곧 죽음이다. 그 날 먹을 것을 준비하지 못하면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면, 장자 즉 장성한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의 노후를 위해 먹을 것을 비축할 것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와 노인에 대한 공경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힘이 있을 때 모으지 못하면 힘이 없을 때 죽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의 젊은이들이 자기 먹을 것만 챙긴다면 누가 다른 이를 위하여 전쟁에 참여할까 싶다. 목숨을 구하려면 혼자 멀리 도망쳐버리면 되는데 말이다.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노후를 직접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아무도 남을 위해 식량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경제는 유통되어야 커지는데, 이런 식이 반복된다면 국가 경제는 위축된다. 그러면 강한 군대를 키울 수 가 없다. 결국 더 강한 나라가 침공하면 또 죽는다.

그래서 효제의 강조는 개인 입장에서는 노후보장이고, 사회 입장에서는 복지체계 확충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 너, 우리 모두가 효제가 중요한 가치임을 인식하고 실천하면 장성한 자들은 안심하고 잉여 생산물을 사회에 내놓을 것이고, 기꺼이 국방을 위해 힘쓰게 된다. 효제의 가치가 확장되면 충이 되어 왕을 중심으로 강력한 군대를 양성하여 점점
그 나라는 강해진다. 강해지는 만큼 백성은 생존할 확률이 더 높아지게 된다. 이러한 선순환 과정은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때문에 유학에서는 효제충신을 목숨걸고 강조하는 것이다.

 

可使制梃 以撻秦楚之堅甲利兵矣。
가사제정 이달진초지견갑이병의.

몽둥이를 만들어 진나라와 초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예리한 병기를 두들기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使 [A] 以 [B]는 'A하여 B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梃은 몽둥이를 말한다. 그리고 甲은 갑옷, 兵은 병기를 의미한다.

위에서 설명한 내용이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 효제충신이 강조되는 사회는 장성한 자들로 하여금 마음놓고 생업과 국방에 매진할 수 있도록 만든다. 행여 내가 전쟁에서 전사하더라도 내 가족을 사회가 챙겨준다면 덜 억울할 것이다.

맹자는 바로 이 점을 포착했다. 백성들을 서로 뭉치게 하고, 전쟁에서 최대한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비법은 바로 효제충신의 네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彼 奪其民時,使不得耕耨以養其父母,父母凍餓,兄弟妻子離散。
피 탈기민시, 사불득경누이양기부모, 부모동아, 형제처자이산.

다른 나라 왕이 그 백성들의 시간을 빼앗아, 밭갈고 김매어서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게 하면, 부모가 춥고 굶주리며, 형제와 처자식이 흩어질 것입니다.

 

彼는 저쪽, 저 사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다른 나라의 왕이다. 이전에 백성들의 생활이 풍요롭게 되기위해서는 그 시간을 빼앗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씨뿌릴 때 씨를 뿌려야 하고, 거둘 때 거두어야 하며, 산에 들어가 땔감을 할 때도 적절한 시기에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전쟁과 부역으로 백성을 마구잡이로 동원한다면 그 생활은 궁핍함을 면치 못한다.

 

彼 陷溺其民,王往而征之,夫誰與王敵?故曰:『仁者無敵。』王請勿疑!」
피 함닉기민, 왕왕이정지, 부수여왕적? 고왈 : "인자무적." 왕청물의!

그들이 그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면, 왕께서 가서 정복할 때, 대체 누가 왕과 대적하겠습니까? 고로 말씀드리길, "어진 자는 적이 없다."라고 합니다. 왕께 청하건데, 의심하지 마소서.

 

백성은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시간을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된다. 백성을 수탈하는 나라에 어진 군주가 쳐들어간다고 해도, 그 백성들에게는 오히려 환영받을 일이라는 것이다.

나라 경영의 진수에 대해서 맹자가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단순히 인기영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마음을 다할 때 적대적인 사람들이라고 해도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상대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럴러면 나부터 어진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어질다(仁)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진정으로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이다. '배려'보다 깊고, '사랑'보다 넓은 개념이다.

 


奪(탈 : 빼앗다, 수탈하다), 耕(경 : 밭갈다), 耨(누 : 김매다), 陷(함 : 함정, 몰아넣다), 溺(닉 : 빠뜨리다), 敵(적 : 적, 대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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